1000마리 학이 노니는 순천만 … 주민들 손끝에서 꿈이 익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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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만 주변의 논에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가 무리를 지어 낟알을 먹고 있다. 순천시는 흑두루미 1000마리가 찾는 ‘천학(千鶴)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2007년부터 전신주 238개를 옮기고 논에 낟알을 뿌리는 등의 노력을 했다. [조용철 기자]

3일 오전 6시50분 전남 순천시 순천만. 1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하나 둘씩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20여 분 후, 흑두루미 떼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꾸루루루’ 소리를 내며 새까맣게 떼를 지어 논으로 날아들더니 낱알을 주워먹기 시작했다.

서남 해안에 위치한 순천만이 겨울 철새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순천만은 국가 지정 문화재이자 2006년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생태 습지다. 갯벌 22㎢와 갈대밭에 철새 230여 종과 식생물 430여 종이 살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습지 살리기에 나선 순천시는 2007년부터 1000마리의 학이 찾는 ‘천학(千鶴)의 도시’를 목표로 흑두루미 보전에 힘을 쏟고 있다.

순천시는 밤낮으로 갯벌과 농지를 넘나드는 새들에게 위협이 되는 전신주부터 뽑았다. 순천시 최덕림 경제환경국장은 “6개월 만에 전신주 238개를 뽑고 주변 기지국 세 곳을 이전했다”며 “비용도 문제지만 사업자와 지역 주민들을 설득해 인식을 바꾸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신경이 예민한 두루미들이 마음놓고 생활하도록 주변 지역 차량은 물론 자전거 출입도 금지했다. 내년 봄께 알을 낳으려고 추운 시베리아로 이동할 철새들이 훼방 없이 힘을 비축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두루미 한 마리가 하루 종일 쪼아 먹는 낟알은 총 7000개. 적의 위협을 느껴 하늘로 한 번 날아오를 때마다 낟알 2000~3000개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감안한 배려다. 먹이활동을 위해 비료 살포기로 매일 쌀 4~5부대 분량의 낟알을 논 주변에 뿌려준다. 농민들을 설득해 농법도 친환경 유기농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90년대 중반 100여 마리, 2007년 11월 254마리였던 흑두루미 개체수가 올해는 361마리로 증가했다. 세계에 9000여 마리뿐인 것을 감안하면 성공적이었다. 세계 개체수의 90%가 모이는 일본 이즈미시에서 노란색 가락지를 발목에 끼운 흑두루미도 발견됐다. 두루미가 일본보다 한국의 순천만을 먼저 찾았다는 증거다.

흑두루미를 비롯한 철새가 날아들자 올해만 26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순천만을 다녀갔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2004년 1만 명에 불과하던 외국인 관광객이 5년 만에 6만여 명으로 늘어났다”며 “국내외 관광객 증가로 1000억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2년째 두루미 보존 활동에 앞장서 온 주민 정종태(62)씨는 “일상생활이 까다로워졌지만 두루미를 살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혜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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