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고증 준비하는 안준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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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팔만대장경은 그 제작 과정이 전해오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올바른 관리와 보전을 위해 이제는 철저한 고증 작업이 필요합니다. "

해인사(海印寺)인근 가야산 자락에서 고려대장경 등을 새기는 안준영(安準永.43.이산각연구소장)씨는 요즘 가슴이 요동친다.

고증을 위해 지난 3년간 남해바다(경남 남해군 고현면 관음포)개펄에 묻어둔 7t가량의 산벚나무.돌배나무 등 경판용 나무 1백여 그루를 내달 20일쯤 끄집어 내기 때문이다.

8백년전 고려인들이 팔만대장경을 만들 당시 갈라짐과 뒤틀림, 해충 피해 등을 막기 위해 경판용 목재를 3년씩 바다에 담궜다는 불가(佛家)의 구전(口傳)에 바탕을 둔 작업이다.

나무를 건져내면 그 때부터 安씨의 고증 작업은 바빠지게 된다. 우선 침목(浸木)이 어떻게 변했는지 경북대 박상진(朴相珍.임산공학)교수 등 관련 학자들에게 시편(試片)을 보내 분야별로 연구를 의뢰할 예정이다.

재질 변화는 임산공학자에게, 나무에 기생한 바다생물은 생태학자 등에게 각각 맡긴다.

올해로 20여년째 조각수(彫刻手)일을 하는 安씨는 팔만대장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제작과정이 신비스럽기만 하다고 말한다.

8만1천여장의 방대한 경판. 노련한 조각수라도 경판 1면을 새기는데 1주일씩 걸리는 일을 몽고와 전쟁을 치르며 어떻게 16년만에 완성할 수 있었을까. 어디서 만들어 또 어떻게 운반했을까. 8백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형 하나 없는 것은….

"지금 팔만대장경을 만든다면 아마 2조 몇천억은 족히 들 것입니다. 문자를 전해주는 경전은 전쟁을 대비하는 만리장성과는 그 가치를 비교할 수조차 없죠. "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선 팔만대장경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해 6월 고령에 있는 폐교를 빌려 팔만대장경을 이해하고 직접 판각해 볼 수 있는 체험학교를 열었다.

그는 필생의 작업으로 자신이 벌이는 고증과정을 논문으로도 남길 계획이다.

"고증작업을 통해 장경각(藏經閣)속에 갇혀 있는 팔만대장경이 살아있는 문화재로 승화되는 조그만 계기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

고령〓송의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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