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바둑 열기 속으로] 상. 48회 맞은 유럽선수권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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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유럽의 바둑대회는 휴양지에서 축제처럼 치러진다. 사진은 폴란드 투홀라에서 열린 2004 유럽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의 대국 장면.

동양은 항상 서구에 잘 보이고 싶어한다. 그들 속에 끼이고 싶어하고, 앞선 그들의 기술을 전수받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종목도 있다. 바로 바둑이다. 한국 바둑팀을 이끌고 가 해마다 유럽 바둑과 교류하고 있는 명지대 한상대(교양학부.전 호주 시드니대)교수의 유럽 바둑 이야기를 두번에 걸쳐 싣는다.

바둑은 유럽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일까. 약 10만명을 헤아리는 유럽 바둑인들의 지적 수준은 교수, 전문직 종사자 등 서양의 평균 수준보다 월등히 높다. 올해 유럽 바둑선수권전(EGC)은 어느덧 48회째. 8월 7일까지 보름간 폴란드의 휴양도시 투홀라에서 열렸다. 참가자는 700여명. 유럽 바둑꾼들은 손꼽아 기다려온 이 축제를 위해 휴가를 얻어 투홀라에 몰려들었다. 유럽 바둑 보급의 선구자격인 일본은 50여명, 최근 보급에 합류한 중국과 한국도 20명 정도가 합류했다.

이곳에서 만난 독일의 컴퓨터 박사 룽거는 "한국은 세계 바둑인의 드림랜드"라고 소리 높여 말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유럽의 바둑 집행부는 바둑인끼리의 홈스테이 등 한국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한국의 아마강자가 유럽으로 건너와 클럽을 도와줄 수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대회엔 가족이나 제자 어린이를 여러명 데리고 온 사람, 애인이나 부부와 같이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중.일 3국은 이 대회에 매년 프로기사를 파견한다. 올해도 한국.일본에선 5명, 중국은 3명을 보냈다. 한국에 유학해 프로기사가 된 러시아의 샤샤 디너스타인과 스베타 쉭시나 초단, 루마니아인으로 일본에서 프로가 된 타라누 카탈린5단, 이탈리아로 귀화한 일본의 유키2단 등 유명인사들도 대회장을 찾았다. 외양만 따진다면 유럽선수권대회야말로 가장 세계화된 바둑모임인지도 모른다.

오픈대회인 이 대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 기사(윤광선 아마7단)가 우승했다. 샤샤는 2위, 카탈린은 3위.

2005년 49회 유럽대회는 프라하, 2006년 대회는 로마로 결정돼 있다. 대회기간 중 유럽바둑연맹 정기총회가 열렸다. 2007년 개최지 선정을 위해 스웨덴과 오스트리아가 올림픽 유치를 방불케 하는 불꽃 튀는 경쟁을 한 결과 오스트리아가 11대 10으로 승리, 51회 대회를 개최하게 됐다.

2007년 대회의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했던 이유는 한국이 4년마다 해외에서 치르기로 한 바둑학술대회와 관련이 깊다. 명지대 바둑학과가 주최하는 바둑학술대회는 200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회 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한국인 40여명이 대거 유럽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한국은 대회를 완전 휩쓸었고 이후 유럽의 대도시를 순회하며 수많은 교류전을 통해 세계 최강의 한국 바둑을 보급했다.

유럽 바둑인들은 이 사건을 "The first Korean invasion(최초의 한국인 내습)"이라 불렀다. 오스트리아와 스웨덴 바둑집행부는 그런 일이 다시한번 자기 나라에서 재현되기를 기대한 것이다.

한상대<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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