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앵커 댄 래더 '오발탄'으로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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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CBS방송의 간판 앵커 댄 래더(73.사진)가 위기를 맞았다. 래더는 지난 8일 보도프로그램 '60분'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병역특혜 의혹을 강도 높게 제기했다.

부시가 텍사스주 공군 방위군으로 복무할 당시 지휘관이었던 젤리 킬리언 중령(84년 사망)이 작성했다는 메모 4건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1972년 5월~73년 8월 사이 써졌다는 이들 메모에는 부시가 당시 부대에 출근을 하지 않았고, 건강진단을 받으라는 지시도 지키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또 킬리언 자신은 상부로부터 '부시의 직무평가를 잘해주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래더는"문건들은 확실히 믿을 만한 인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 등 다른 언론들의 검증 결과 문제의 메모들은 위조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활자가 70년대 타자기가 아니라 80년대 이후 컴퓨터에서 쓰이는 것들이었다. 종이 표면에는 여러 차례 복사 과정을 거친 흔적도 발견됐다. 킬리언의 전처도"남편은 그런 문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래더는 소식통을 단단히 믿은 탓인지 방송 전 "문서가 진짜임을 절대 확신한다"고 동료 기자들에게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도가 나간 뒤 CBS에 고용된 감정 전문가 2명이 "문건에 이상한 점이 발견돼 방송 하루 전 보도를 강력히 반대했다"고 주장하는 등 사내에서도 의혹이 제기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래더는 처음엔 "보도 내용이 정확하다"며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의혹이 증폭되자 15일 "메모의 진위야 어찌됐든 부시의 군복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니냐"고 한발 물러섰다.

만일 조작된 문서를 근거로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보도를 한 것으로 입증되면 래더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뉴욕 포스트는 15일 이번 사건을 '메모 게이트', 문제의 문건을'래더 문건'이라 비꼬았다. 워싱턴 포스트도 "CBS는 자신이 고용한 전문가들의 경고조차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로이 블런트 하원 원내총무 등 공화당 의원 40명은 15일"괴문건의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CBS에 보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16일 "케리의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부시 대통령을 갈갈이 찢기 위해 나선 민주당원들의 구태의연한 공격"이라고 맹공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와 LA타임스 등은 킬리언 중령의 비서를 했던 녹스(86.여)의 말을 인용해 "메모는 위조됐지만 메모내용은 킬리언 중령이 부시와 관련해 내게 타자를 지시했던 말과 같다"고 보도했다.

◆ 댄 래더는=1950년대 AP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래더는 UPI를 거쳐 62년 CBS로 자리를 옮겼고, 81년 전설적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의 뒤를 이어 CBS의 간판앵커가 됐다. 이라크전 직전 사담 후세인을 단독 인터뷰했고 지난 5월엔 미군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학대사건을 처음 폭로하는 등 숱한 특종을 쌓아왔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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