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터뷰] 일본 ‘민주당 사관학교’ 마쓰시타 정경숙의 후루야마 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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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부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시에 있는 유적지 입구에는 ‘메이지(明治) 유신의 발상지’란 글씨가 쓰인 큰 바위가 있다. 에도(江戶) 막부 말기 개혁가였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학당을 세워 인재를 길러냈던 곳이다. 요시다의 제자들은 264년간 지배했던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연 메이지 유신(1868년)의 주역들이 됐다.

올 8월 30일, 야당이던 민주당이 54년간 장기집권했던 자민당을 완전히 침몰시키고 집권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마쓰시타 전기 설립자)가 30년 전 ‘일본 개혁과 인재 양성’을 위해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설립했던 마쓰시타 정경숙(政經塾)의 졸업생들이 주역 중 하나였다. 정경숙 졸업생 중 25명은 민주당 의원이 됐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47) 국토교통상과 하라구치 가즈히로(原口一博·50) 총무상과 외무성 부상 2명 등 8명은 입각했다. 그래서 마쓰시타 정경숙은 ‘민주당 사관학교’로 부상했다. 일본 역사를 바꾼 교육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8년 전부터 정경숙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후루야마 가즈히로(古山和宏·52) 숙두(塾頭·학장)가 최근 동북아 역사재단의 초청으로 방한해 정경숙의 교육 철학, 한·일 간 교류 방안 등에 대해 강연했다. 이후 기자와 만난 그는 “교육 목표는 일본의 미래 지도자 육성이지만, 앞으로는 글로벌 리더를 키우려 한다”며 “동아시아 공동체 이야기도 있듯이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역사 인식 교육도 중요하게 여긴다”고 밝혔다. 또 “한국과 일본의 젊은 지도자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경숙 3기생이다.

-지난 8월 총선에서 정경숙 출신이 대약진을 했는데.

“총선 전에는 민주당 의원이 14명, 자민당 12명이었다. 총선 후에는 민주당 25명, 자민당 6명이 당선됐다.(공명당·공산당 등 군소정당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그 밖에 참의원 3명, 광역자치단체장 2명, 시장 9명이 있다. 그래서 ‘정경숙 출신 정당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정경숙 출신들이 민주당에 많이 간 이유는, 특별히 민주당에 맞는 정치 이념을 가르치는가.

“특정 이념보다는 기본 철학을 가르친다. 정경숙의 목표는 일본과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이지 정치인 양성이 아니다. 특정 이념을 가르쳤다면 정치권에서 압력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졸업생이 민주당으로 많이 가는 이유는 개혁을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자민당에 세습의원이 너무 많아 돈, 집안의 힘이 없는 정경숙 출신들이 민주당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반적인 해석에 대해 그는 ‘그럴 수 있다’며 동의했다.)

-마쓰시타 회장이 왜 정경숙을 만들었는가.

“정경숙이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어 이념 연구를 하는 대학원이나 선거 전략·전술을 가르치는 정치인 양성 학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전혀 아니다. 마쓰시타 회장은 85세 때인 1979년 일본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국가이념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인재를 육성하자는 뜻에서 정경숙을 만들었다. 일본에선 기업가가 성공하면 교육에 투자하는 전통이 있다.”

-재단법인인데, 운영 자금은.

“정경숙은 마쓰시타 회장의 사재 70억 엔과 기업 헌금 50억 엔으로 출발했다. 20억 엔으로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고 운영자금은 100억 엔이다. 이 중 80억 엔을 해외 펀드에서 운영해 연간 3억~4억 엔의 수익을 올려 사용한다. 공익법인이지만, 정부 보조금 등은 받지 않는다. 지금은 엔고로 수익이 줄어 고민이다.”

-어떤 사람들이 입학하는가.

“요즘은 사회에서 활동하다 입학하는 사람이 많다. 신문기자, 기업체 직원, 의사, 교사 등 다양하다. 입학 연령은 22~35세로 제한하고 있고, 교육기간은 3년이다. 연간 200명 정도가 지원하는데, 6명 정도만 뽑고 있다. 현재 총 인원은 18명이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육 목표는 무엇인가.

“심신 연마, 인간관 탐구, 기본이념 탐구, 의지 확립 등에 중점을 둔다. 다도·서도·검도·선 등 일본의 전통을 배우는 필수과정도 있다. 일본의 전통을 알아야 일본의 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쓰시타 회장은 ‘인간을 배워라’ ‘지식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지식을 이용하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는 결국 인간을 알고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경숙 교육 방식의 특징은.

“우선 상근 강사가 없다. ‘자수자득(自修自得, 스스로 익혀 깨우친다)’이 교육 방침이다. 마쓰시타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학력이 전부다. 그 후 오사카에서 사환이 된 후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성공했다. 그는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탐구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교과서나 교사에게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 숙생들은 스스로 교육과정을 생각해 강사를 초빙하고, 직접 배우러 가기도 한다. 현장을 매우 중시한다. 이를 위해 숙생에게는 매월 20만~25만 엔의 연수비 등을 지원한다. 1년생은 24시간 동안 100㎞ 행군도 한다.”

-졸업생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약 240명인데, 절반은 정치권에 있다. 나머지 4분의 1은 경제계, 4분의 1은 교육 또는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졸업생 중에는 미국·중국·네덜란드·프랑스·대만·한국 등 외국인도 있다.”

글=오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후루야마 가즈히로=마쓰시타 정경숙의 숙두. 정경숙은 연수·정경연구소·사회활동추진실 등 3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숙두는 숙생 교육을 책임지는 학장 격이다. 정경숙 3기 출신. 졸업 후 정치 활동을 했다. 1993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현 민주당 간사장과 함께 자민당을 탈당한 후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후 정치를 하다가 8년 전부터 정경숙 숙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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