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특수' 한국·미국·유럽 전문가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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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는 6월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북한 특수’를 노린 국내외 기업의 북한시장 진출 움직임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북한 진출을 계획 중인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의(AMCHAM)북한위원회 위원장,7년 넘게 평양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장쟈크 그로하 주한유럽연합상의(EUCCK)북한위원회 위원장,전국경제인연합회 유한수(兪翰樹)전무가 자리를 함께 해 민간기업의 북한 진출 계획과 전망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장쟈크 그로하 위원장=한국 및 외국 기업의 북한과의 경협이 활성화되면 분명히 굉장한(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같은 교류가 정부·기업간이 아닌,기업·기업간 등 민간 차원에서 주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제프리 존스위원장=북한특수 규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어렵지만,북한에 큰 시장 팽창이 일어날 것이다.북한에서 사업하려는 외국 기업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 유한수 전무=북한과 경제협력은 무엇보다 광범위한 사전 기초조사가 필요하다.무엇보다 경협이 잘 될 경우 남북한간 긴장완화가 가져올 비용절감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 존스=북한은 ‘기회의 땅’이다.1960년대 남한에 외국 기업이 처음 투자할 때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그런데 지금 한국을 보아라.다만 투자할 대 장기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경협으로 성과가 생기고 북한 경제의 발전이 가시화하기 까지는 10∼15년이 걸릴 것이다.

*** 유=남한 기업 입장에서 대북 투자가 당장 돈을 버는 차원은 아니다.사업이란 장기적 포석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 그로하=북한에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다만 현지 여건을 꼼꼼히 따져본 뒤 어떤 사업이 타당한 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 존스=북한과의 경협을 추진하면서 투자재원을 걱정하는데,자본 조달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경협의 물꼬만 터지면 유엔(UN) 기금과 한국·미국과 유럽연합 등 국가 차원은 물론,개인 투자자도 달려들 것이다.다만 긴장완화 측면 뿐만 아니라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남북한의 군축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북한이 계약을 준수하면서 투자자금을 보호할 의향이 있는 지 여부다.북한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현지에 투자하는 자금은 물론 거기서 벌어들인 영업수익을 반드시 법적인 계약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또 북측과 외국기업간 분쟁이 생겼을 경우 이를 해결할 사법기관이나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도 걱정거리다.

*** 그로하=투자 보호와 보다 많은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북한 정부가 초기에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외국인 투자자들은 우선적으로 이중과세 방지와 사유재산권 보호 등에 대한 북한 정부의 약속을 바라고 있다.

*** 유=투자 재원을 전적으로 남한측이 부담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국제기구 등 자금은 많다.다만 두분이 지적한대로 교역 및 법적인 절차 등 북한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현 단계에서 없다는 게 문제다.북한이 투자 유치를 위해 전체 시스템을 바꿀 계획은 없을 것으로 본다.그러나 금강산 관광 때처럼 한정된 지역에 적용되는 관련 법을 만들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 존스=자금과 투자보장 외에 북한 현지의 열악한 에너지 사정도 문제다.북한은 정유소가 두 개에 불과하고 발전시설도 낡다.2007년 북한 경수로 발전 공사가 끝나면 사정이 조금 나아지겠지만 문제는 지금이다.항만·도로 등 운송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 유=에너지와 물류 문제 못지 않게 남북한 경협의 인식 차가 크다.남한이 상호호혜적인 사업으로 생각하는 데 비해 북한측은 자기들에 대한 지원으로 이해하고 있다.전경련은 곧 대북투자 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인데,여기에는 전경련 회원사뿐만 아니라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도 포함시키겠다.외국 기업들이 투자 위험도를 따진다면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

*** 존스=미국 상공회의소 소속 기업 가운데 북한에 북한에 투자하려는 기업이 많다.그런데 99년 12월로 예정됐던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솔직히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 미국 기업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은 것은 미국내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또 양국간 화해의 실마리가 될 북한 고위 관료의 미국 방문이 미뤄지고 있다.북한 정부가 미국 방문을 주저하는 것은아직까지 미국이 북한을 테러 국가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로하=EU에는 북한 진출에 대한 제재 조항이 없다.이탈리아·덴마크·핀란드·포르투갈·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가 이미 북한과 경협 협상을 진행하거나 마쳤다.실제로 주한EU상의는 95년부터 해마다 40∼50개의 유럽 기업을 모아 북한에 사절단을 보내고 있다.올 하반기에도 회원사들이 북한을 방문할 것이다.

외국 기업들은 북한에 수출할 상품으로 기계류와 화학·섬유·플라스틱과 공산품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또 북한에서 사올 만한 물건으론 직물과 수산물,그리고 아연 등 광물류를 치고 있다.

*** 유=대북 투자는 장기적 안목에서 해야 한다.무엇보다 기업간 과당경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시간을 갖고 북한측의 신뢰를 쌓으면서 경협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만약 경협 추진 과정에서 분쟁이 생길 경우 사안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존스=북한 진출에는 기업간 협력이 중요하다.분명한 것은 북한에서 사업을 벌이는 현대는 물론이고 한국과 외국의 어떤 기업도 북한 사업에 대해선 아직 초보자라는 점이다.따라서 양측간 의사소통 창구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그로하=북한에 투자하려는 기업은 반드시 점진적·단계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또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존스=한국 정부로선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납북한 정상회담에선 양측간 군사적 긴장을 푸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현 시점에서 남북한이 통일을 모든 문제의 해결점으로 생각해 매달리는 것보다 안전한 미래를 위해 남북한이 공동의 비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 그로하=인내심을 갖고 의사소통 창구를 확보하는데 가장 신경써야 한다.기업으로선 북한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아주 길고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북한측 경협 상대방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리=최원기·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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