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 ①] 김승우 “김태희 평가 야박…난 오열 장면에 울컥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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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존재감' '폭풍 간지'…. 요즘 이런 말 모르면 간첩이다. KBS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얼음처럼 냉철하면서도 불처럼 뜨거운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는 김승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주 서울 청담동의 한 기업 홍보관에서 만난 김승우는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북측 요원 박철영처럼 위엄있고 근사했다.

그러나 이내 특유의 부드러운 제스처와 "으하하" 하면서 터뜨리는 쩌렁쩌렁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3년 전 만남을 일일이 기억할 정도로 세심했다.

이날 '취중토크'의 주종은 요즘 대세라는 막걸리였다. 기업 홍보관에 양해를 구해 김승우가 직접 막걸리를 공수했다. 덕분에 와인잔에 뽀얀 막걸리를 부어마시는 독특한 상황이 연출됐다. 안주는 매운 낙지볶음과 야채였다. '막걸리 열풍'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 요즘 막걸리에 빠져살아

-술 좀 하시죠.

"웬걸요. 남들이 다 술 잘하는 줄 아는데…. 실은 아니에요. 저 대학교 때는 술 알레르기 체질이었어요. 몇 잔 마시면 온 몸에 막 두드러기나는 사람이었죠."

-의외네요. 드라마 속 요원 카리스마라면 말술도 모자랄 것 같은데.

"한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길 가던 점쟁이가 나보고 술 먹으면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했죠. 술 많이 못 해요."

-그런데 막걸리는 술좀 하신다는 분들이 나중에 찾는 술이잖아요.

"그런가요? 전 그냥 알코올 도수가 낮고 출출할 때 허기 달래기에도 좋아서 즐겨요. 저녁 대신 한 잔 먹기 좋잖아요. 장모님이 사위 먹으라고 가끔 인삼 막걸리 사다주시기도 해요.(웃음)"

-그럼 술은 언제부터 마셨죠?

"대학 졸업하고 30대를 넘어가면서 조금씩 홀짝거리기 시작한 게 제법 마시게 됐어요. 막걸리는 1주일에 한 두 번씩 마셔요. 그리고 소주는 주량이 석 잔인데 얼마 전 '아이리스' 회식 때는 한 병 정도 먹은 것 같고…. 폭탄주는 진짜 못 먹어요. 다음날 속 뒤집혀서….(웃음)"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막걸리 와인잔을 들었다. 의외로 운치가 있었다. 서로 "이렇게 먹는 건 난생 처음"이라며 연신 웃었다. 그의 말대로 마침 출출한 때여서 시장기를 달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자꾸 건배를 하게 됐다.

▶ 김태희, 노력 비해 평가 야박해

-'미친 존재감' 박철영이라며 난리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진짜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맡았던 역할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죠. 그간 부드러운 역할을 많이 했죠. 이번에 또 새로 배우는 기분이에요. 박철영은 야심이 많은 남자죠."

-혹시 실제 모델이 있나요.

"실제 모델은 아니어도 북한에서 넘어온 분을 지인을 통해 만난 적이 있어요.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표준말을 쓰시더라고요. 스타일도 청담동 저리가라 할 정도였고요. 북한에서도 김일성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대에서 유학한 최고 엘리트셨어요. 아무 말 없으면 북한 출신 사람인지 전혀 모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투리 연기가 독특하군요.

"북한 사투리를 쓰는 건 처음부터 자제했죠. 대신 알 듯 모를 듯한 변화를 줬어요. 그게 시청자들에겐 북한 사투리 같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노력한 것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았어요."

-다른 분들 얘기 좀 물어볼게요. 촬영장에서 김태희씨는 어때요.

"발전하는 모습에 비해서 평가가 야박한 것 같아요. 분명이 '뜬' 이유가 있는 친구거든요. CF 모습만은 절대 아니에요. 개인적으론 김태희씨가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울컥해진 적이 여러 번 있어요."

-김소연씨는요.

"한 마디로 천사같은 친구죠. 양보심과 배려심이 엄청 커요. 헝가리 촬영 때 '이번 작품에 독을 품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어요.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아요."

-파트너로서 러브 라인이 있을 법도 한데.

"처음부터 일부러 빼달라고 했어요. 박철영에게는 그런 달콤한 러브신은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작가님도 동의하셨어요."

▶ 이병헌은 볼 꼬집어주고 싶을 만큼 연기 잘해

-이병헌씨를 안 물어볼 수 없네요.

"역시 큰물에 갔다온 사람은 달라요. 현장에서 말을 많이 해요. 볼 꼬집으면서 '너 연기 잘 하더라' 칭찬하고, '연기 좀 가르쳐 줘'라고 농담도 해요. 가슴을 열고 연기하는 배우에요."

-배우로서 질투심은 없나요.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러나 제가 식스팩 복근을 만들어봤자 뭐하겠어요.(웃음) 전 한국에서나 잘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병헌이와는 캐릭터가 달라서 관계없어요. 저 혼자 한석규 선배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데(웃음) 더 노력할 수 있게 자극제가 돼 주세요."

김승우는 평소 사람좋은 인상 만큼이나 다른 배우들의 평가에 대해서도 매우 넉넉했다. 그리고 적극적이었다.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도 전해졌다. 동석하고 있던 매니저가 "다른 사람 얘기 말고 김승우씨에 대한 걸 질문해 달라"고 농담 섞인 말을 건네왔지만 김승우는 자신이 느낀 바를 성심성의껏 이야기했다. 막걸리가 한 순배 돌자 그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김남주씨도 '아이리스' 보시죠?

"그럼요. 아주 열혈 시청자죠. 요즘은 '아이리스'가 방송되는 수·목요일 밤에는 약속도 안 잡고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 합니다. 얼마 전엔 제가 이병헌을 추격하니까 안 잡혔으면 좋겠다며 열심히 몰입해 보더라고요."

-'내조의 여왕' 때는 반대로 외조하셨죠.

"서로 응원해주면 힘이 되니까요. 그때 경찰관으로 카메오 출연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
사진=김진경 기자 [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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