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남자…' 펴낸 배수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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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소설가 배수아(35)씨가 사람의 몸에 대해 쓴 산문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이룸.6천9백원)를 내놓았다.

소설의 소재나 글쓰는 방식이 남달리 튀는 '신세대 작가' 배씨가 이번에도 특이한 주제를 남다르게 썼다.

몸이라는 소재도 그렇고, 저속하기 쉬운 얘기를 꽤나 진지하게 파고 든 것도 그렇다.

"지난해 봄 처음 청탁을 받고는 거절했어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요. 금기시돼온 육체와 성에 대한 얘기를, 더구나 여자가 쓴다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

청탁을 받고 자료를 찾아보니 거의 대부분 저속한 내용들이었다.

수준 높은 책은 배씨 자신이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전문서적.

"몸과 성에 대해 누구나 생각해봤을 만한 얘기를 진지하게 풀어가는 글들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용기를 냈습니다. 남들이 안해본 일을 새롭게 시도해본다는 것은 재미있잖아요. "

배씨는 특별히 참고할 만한 것도 없는 상황에서 주변사람들의 몸짓을 몰래 관찰하기 시작했다.

병무청 공무원인 배씨는 동료직원은 물론 민원인들도 신체적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그에 따른 몸짓의 특징을 찾았다.

여고시절 만원버스에서 은근히 자신의 몸을 만지던 아저씨의 얼굴도 떠올려봤고, 독신 여자들의 성격을 6가지로 분류해가며 '섹스없는 결혼' 의 유형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소설이나 영화속의 특징적인 인물도 간추려 정리했다.

배씨는 한마디로 "마치 논술고사를 준비하듯 주제에 맞춰 공부를 해가며 글을 썼다" 고 한다.

"이제 사람들은 비만을 참지 못한다.

…비만은 경제적 빈곤의 상징이고 나태함의 상징이며 자제심이 부족한 결과이고 일종의 장애이며 치료되어야 할 병이고 핸디캡이다.

…과거 절대빈곤의 시절과는 반대로 비만이 경제적인 열등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비만도가 계층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 '비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다이어트에 병적으로 매달리는 요즘 몸뚱이들의 심리, 그 사회적 의미의 변화에 대한 이런 해설은 배씨가 의도한 '진지한 담론' 의 수준을 가늠케 해준다. 배씨는 성적 문제, 즉 관음증.성도착.노출증.매춘.결혼 등에 대해서도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입장은 결론을 내지는 않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최근 몸이나 성 문제에 대해 개방적이길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그런 문제들은 어느 정도 감춰져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 아니겠어요. "

결론은 몸에 대한 사랑이다.

'의사소통의 기본은 몸' '육체는 가장 중요한 인생의 도구' '몸은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극단' 이라는 명제들이 모두 그렇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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