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서 김정일 무슨 얘기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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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을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수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상회담에선 어떻게 나올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金위원장의 면모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어떤 자세를 보일지 불가측성이 높지만 이를 파악할 단서는 주어져 있다. 실마리는 일단 북측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느냐에서 찾을 수 있다.

金위원장은 '원칙' 과 '실리(實利)' 양쪽에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원칙에는 북측이 당국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놓은 세가지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전제조건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국가보안법 철폐, 이른바 통일 애국인사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등 한.미 공조파기가 포함돼 있다.

북한측은 'DJ 베를린 선언' 이후에도 간간이 이 조건들이 관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정상회담에서 金위원장은 전제조건들에 대한 金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할 가능성이 크다.

보안법 개정.장기수 송환문제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국내문제다. 우리측은 여론 흐름과 야당의 반응을 주시하면서 북측 요구를 어느 선에서 들어줄지를 결정할 것이다.

한.미 공조 파기는 주한미군 주둔, 한미연합사 운영,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돼 있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과 연결된 미묘한 사안이다. 자칫 한반도의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다.

10일 평양 정상회담 합의발표 직후 미 행정부는 "주한미군 위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 (제임스 루빈 국무부 대변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놓고 느슨한 답변을 준비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을 받아들였다면 다른 요인이 더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 사정을 감안하면 金위원장이 중시하는 알맹이는 '실리' 측면일 것이다. 실리와 관련된 쌍방 협의는 서울에서 선거철 '판도라 상자' 가 되기 쉬운 만큼 당분간 공개되지 않겠지만 그것 없이 북측이 이번 합의에 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살리기에 나선 金위원장이 정상회담을 받은 직접적 동기가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북한 당국이 모든 분야에서 실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북측이 남북 민간교류에서 우리측 단체.개인에게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요청한다는 것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북측은 베를린 선언 이후 남측의 '실천행동' 이 중요하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러다가 4.8합의에서는 '실천행동' 에 관한 언급이 빠졌다.

그렇다면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의과정에서 북측이 '실천행동' 의 이행방식에 대해 관심을 표명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북한이 총선을 며칠 앞두고 이번 합의에 응한 것은 대북지원을 얻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金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나 '북한 특수(特需)' 발언에서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윤곽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金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대북지원 '약속' 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촉구할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자면 면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당국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영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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