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세상보기] 봄,봄,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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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봄을 싫어한다. 왜 그런가, 봄이 오면 뭔가 뒤숭숭해지고 성가시고 귀찮다. 학교 앞 옛 왕릉의 한 기슭엔 벌써 꽃망울이 흡사 화끈거리는 몽우리처럼 돋아 올라와 있는데 일대의 벚꽃이 활짝 피면 그 환장할 장관(壯觀)을 또 어떻게 견딜 것인고. 항차 내 눈에 다가올 그 몽환적이고 후끈후끈한 '미' 의 나른한 흥분상태가 미리서 지겨워지는 것이다.

봄기운에 쉽게 들뜨고 봄바람에 금방 건들거리고 봄내음에 그냥 취해버리는 나에게 봄은 늘 마음에 작란(作亂)하는 마(魔)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봄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내 서가에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십여년 전 섬진마을 매화골 골짜기에 그 마을 이름이 만발하여 실현돼 있는 풍경 속에 고(故)한창기 선생이 선동(煽動)하여 꽃놀이 나온 무리 네댓분이 담소하고 있는 장면이다.

천지에 매화가 빵빵하게 터져 있는 가운데 멀찍이 선암사 지허 스님이 바위에 앉아 있고, 도리우치 모자를 쓴 한창기 선생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막 담배를 꺼내면서 좌중에 뭔가 질문을 꺼내고 있는 중인 듯하고, 내 머리맡엔 매화가지 하나가 필동(筆胴)을 세운 일필휘지의 마감지점에 흰꽃 몇 점을 톡톡톡 뱉어 놓았다. 일행 가운데 모습이 보이지 않은 걸로 보아 이 사진은 아마 강운구씨가 찍은 것일 게다.

그의 눈썰미에 붙들린 이 풍경의 한 구도속에 들어가 보았다는 것은 내 복이지만, 햇살 짱짱한 이 꿈꾸는 것 같은 한때의 봄날을 지켜 보노라면, 그렇다! 모든 유토피아는 우리가 지나쳐온 곳에 있었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옌볜(延邊)에서 펴낸 정다산의 산문집 가운데 '월파정기(月波亭記)' 를 읽었다. 다산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세 월파정을 다녀왔다. 황주 월파정에서 내려다본 달물결은 황홀하였다.

파주 월파정에서는 옛날에 과거시험 같이 보았던 현감하는 친구가 악사와 무동을 보내주어 포구락을 들으며 달물결이 떠받치는 배 위에서 흥감나게 잘 놀았다.

세번째 월파정은 낙동강 기슭에 있는데, 이 세 달물결 풍광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은 낙동강의 월파정이었다고 다산은 적고 있다. 왜냐하면 낙동강 월파정은 진주 쪽에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때마침 여름비가 갑자기 강을 불려버려서 그가 끝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나는 잠시 책을 덮고 하하하, 웃었다.

지난 겨울 시인 황동규 선생 일행에 '찡겨' 동해안 나들이를 다녀왔다. 황동규 선생은 어떤 경치 앞에서도 한 시점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이 후딱 올라가고 금방 내려와 버렸다.

그것은 그곳에 오기 전에 마음의 시점에서 이미 하나의 경치를 완성한 사람이 그 심경(心境)을 확인하는 절차처럼 보였다. 보기 전에 이미 아름다운 것! 이거야말로 한 경지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뭐하러 힘들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가□ 그 점에 대해서 우리의 큰 시인께 묻고 싶었으나 그는 또 앞차를 선도하여 산 하나를 벌써 넘어가고 있었다. 후학 셋이서 뒤차로 백암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동해에서 밀려온 먹구름이 중턱만큼 이르렀을 때 인적 없는 산간도로에 눈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이게 또 한 경치 만들어주는데 우리 모두의 탄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바퀴가 미끌어지는 것이 느껴지자 운전대를 잡은 김윤배 시인이 불안해했고, 젊은 장석남 시인은 계속 고, 못먹어도 고를 외쳐댔고, 앞차는 보이지 않고 연락도 안되고, 그래서 내가 차를 돌려 내려가자고 했다.

출발점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만에 앞차 일행들이 내려왔다. 김명인 시인이 기가 막힌 절경이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우리를 못내 아쉬워해 주었다.

나는 순간 이상한 패배감이 들었다. 태백산맥 절벽에 몰려오는 그 눈보라! 나는 의릉 한 귀퉁이 아직 피지 않은 벚나무 군락 앞에서 그 눈보라를 눈감고 맞이한다. 그리고 서가에는 섬진마을 매화골 사진이 있다.

봄, 봄, 봄. "그 꽃들 가운데 제일 이쁜 것은 흰꽃이다" 고 내게 일러주었던 이는 한창기 선생이었다. 선거철 소음이 광장에서 들려오는 이때 세상의 아름다운 한때를 생각한다.

황지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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