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임] 거북선 사랑모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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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선 사랑모임 회원들이 거북선 그림과 모형을 보여주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앞줄 왼쪽이 조동화씨, 그 옆이 김선원씨. 뒷줄 왼쪽부터 강태욱.이인섭.남궁진.이준범씨. 임현동 기자

화가 조동화씨는 35년 전 한 일본인 친구와 거북선을 주제로 얘기하다가 "일본 안에도 거북선 연구가 한창인데 너희는 뭐하고 있느냐. 거북선과 싸운 일본 전함 한번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거북선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주요 격전지를 답사하고, 자료 수집차 일본에도 여러차례 다녀왔다. 2000년엔 '거북선'이란 제목의 소설도 썼다.

강태욱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해외에서 사업할 때 외국인 파트너에게 은도금을 한 거북선 모형을 선물하곤 했다. 하지만 거북선의 구체적인 내력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입을 다물어야 했다.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장관 재직 시절 일본 일각에서 거북선과 유사한 배를 먼저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어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거북선과 얽힌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이들은 2002년 거북선을 제대로 연구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서예가이자 고미술품 감정가인 김선원(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서화가 이인섭(한국서화교육연합회 회장), 한국화가 이준범씨 등이 가세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모임이 '거북선 사랑모임'이다.

"거북선의 제원이나 설계방법 등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거북선을 완벽하게 복원해 우리의 자존심을 되찾고, 훌륭했던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자고 결의했지요."(남궁진 전 장관)

이들은 한달에 두세차례 만나 새로 발견한 자료나, 각자 연구한 내용을 돌려보며 토론한다. 남궁진 전 장관이 회장으로 모임을 끌어가고, 한자에 능한 김선원씨와 이인섭씨가 고문서 번역을 담당하며, 기록서 저술과 모형 제작은 조동화씨가 맡고 있다. 관심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합류해 지금은 전체 인원이 100명에 육박한다. 주로 대학의 조선학과 교수나 고증사학자지만 일반인도 적지 않다.

이들은 새로운 학설도 적지 않게 제기했다. 예컨대 거북선의 종류가 수십종에 이른다거나, 조선시대 이전부터 거북선이 존재했다는 내용 등이 그렇다. 아직 학계의 공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개연성이 상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선원씨는 "거북선의 유래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기우제와 풍어제 때 쓴 용머리의 반야용선이 거북선의 원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일본 대학에는 거북선을 연구하는 학과까지 있다고 합니다. 자칫하면 일본에서 먼저 복원에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 (이준범씨)

"거북선을 잘 알려면 난중일기 등 고문서를 재해석해야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충무공 우상화에 빠져 번역이 과장 왜곡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인섭씨)

거북선 사랑모임은 거북선 복원과 함께 박물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일단 박물관이 건립되면 주변 바닷가에 거북선을 띄워 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몇몇 지방자치단체와 접촉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회원들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윤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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