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러시아] 上.정국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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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직무대행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러시아가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맞고 있다.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옐친이 터트린 개혁과 개방의 혁명,그리고 이로 인한 대혼돈….푸틴의 집권으로 러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세 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푸틴의 선거캠프이자 싱크탱크인 알렉산드르 하우스 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중앙정부 권력강화를 위한 국정시스템 구축작업이 이뤄질 것" 이라고 말한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거대 제국 소련의 해체와 잔재(殘在)를 파괴하고 청산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 푸틴은 새로운 러시아 제국을 건설할 '21세기형 차르(러시아어로 황제를 일컫는 말)' 가 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 및 공공조직의 인력개편 등을 포함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대통령제의 도입이 1차적으로 필요하다.

푸틴은 선거기간 내내 "러시아와 같은 광활한 국가는 과거엔 차르제, 공산당 독재가 이끌었다면 21세기엔 강력한 대통령제뿐" 이라며 헌법개정과 대통령 임기의 연장을 시사했다.

아울러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푸틴은 과거 밀실정치의 상징적 인물들과 일부 올리가르키(과두산업재벌)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단죄할 것이 분명하다.

옐친 시절에 크렘린을 배경으로 막대한 금권력을 행사했던 이들을 그대로 둔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곧 푸틴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은 사유화 정책의 재편과 함께 일부 전략기업의 재국유화 및 국내산업에 대한 보호정책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평론가 안드리야크 미그라닌은 "푸틴의 새 내각은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겠지만 젊은 개혁파 세력과는 거리를 둘 것이 확실하다" 고 전망했다. 사회정책의 경우 반(反)부패를 명분으로 사실상 언론의 자율권을 빼앗고 연방보안국(FSB)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서방 및 옛소련 국가들의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과의 관계도 보다 자기 목소리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선회할 것이다.

그러나 서방과는 대립보다 협력과 투자가 필수적임을 푸틴도 알고 있어 외교정책은 실용주의 노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푸틴 캠프는 "러시아에 효율성이 커지고 정책의 불가측성이 사라진다면 서방으로서도 푸틴과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며 "반부패 정책 등으로 인한 내부 반발이 해외 자본가들의 투자의욕을 꺾지는 않을 것" 이라고 전망한다.

이를 위해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면서도 제2단계 전략핵무기 감축협정(STARTⅡ) 등을 조기비준하고 곧 도쿄(東京)에서 열릴 G8정상회담에서 '대화가 가능한 지도자' 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기본원칙 모두 지난 10여년 동안의 기득권 세력과 갈등을 초래, 한계에 부닥칠 가능성은 존재한다.

실제로 체첸 다음으로 자치권이 강한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민티미르 샤이미예프 대통령은 "푸틴의 강력한 중앙집중형 대통령제가 지방주권을 제한하는 형태여서는 안된다" 고 경고했다.

또 정치분석가 게오르기 사타로프는 "푸틴이 선거대책 본부장을 크렘린 행정실장이자 옐친의 측근이었던 볼로신에게 맡긴 것은 앞으로의 인사개혁 방향과 한계를 예고하는 것" 이라고 평한다.

정경유착의 청산에 관해서도 대표적 올리가르키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올리가르키들이 권력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푸틴의 말은 지극히 옳다. 다만 실현이 불가능할 뿐" 이라며 은근히 비꼬았다.

모스크바 카네기 연구소의 릴리야 세브초바처럼 "구(舊)올리가르키 일부야 힘을 잃겠지만 대신 새로운 올리가르키들이 나타날 것" 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푸틴을 선택한 대다수 유권자들은 대(對)체첸전에서 보인 푸틴의 결단력과 행동력이 다른 정책을 통해서도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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