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자정부 제대로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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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행정자치부가 올해 안에 '전자정부법' 을 제정하고 2002년까지 전자정부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보사회로의 혁명적인 변화과정에서 전자정부의 완성은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효율성과 편의 및 기타 여러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제정되는 전자정부법이 졸속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법 제정 준비단계에서부터 보다 폭 넓고 깊이있는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 사회를 위한 올바른 전자정부의 개념과 그 주된 기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전자정부를 정의할 때, 정부내의 통일된 전자네트워크 구축과 대(對)시민 행정서비스의 전산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내부적으로는 부처간의 전자적 문서교환이나 전자결재 등을 통해 정부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제고하고, 외부적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전자통신 매체를 이용해 각종 민원서류를 전국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발급해 주는 기능을 갖춘 정부체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행자부가 이번에 발표한 전자정부 추진계획도 이와 같은 전자정부의 개념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행자부 산하 정부전산정보관리연구소의 전자문서 인증을 통해 전자결재를 활성화한다든지, 소위 '키오스크(kiosk)' 라고 하는 무인민원증명발급기를 확대 보급함으로써 전국 어디서나 원스톱(one-stop)으로 모든 민원서류를 온라인 발급해주는 계획들이 그렇다.

이런 일들은 물론 정부의 효율화와 시민 편의를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전자정부가 달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인터넷의 놀라운 발달과 더불어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전자정부의 주된 기능은 인터넷과 같은 양(兩)방향성 전자매체를 통해 정부와 시민간의 전자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활성화시킴으로써 서로간의 이해와 협동을 높이는 것이다.

'즉, 인터넷 등을 통해 시민은 자신의 불만과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는 시민의 의견에 보다 공개적으로 응답함으로써 정부로서는 업무처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민은 정책결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양방향성 전자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뿌리깊은 불신과 부패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전자정부가 담당해야 할 가장 주된 기능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공무원의 경우 자신의 업무처리과정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다면 지금처럼 쉽게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는 없을 것이고, 일반시민 역시 공무원의 업무처리 과정을 확인하고 자신의 의견에 대한 공개적인 답을 들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뿌리깊은 공적 제도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정부법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초점은 전자정부의 완성된 모습이 '전자감시정부' 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번 행자부의 계획을 보면, 원스톱 행정서비스를 위해 현재 기관별로 운용되고 있는 2백50여개의 시민관련 데이터를 2002년까지 3백개로 확대하고 통합네트워크를 통해 운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것은 온라인 행정서비스를 펼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지만, 어찌됐든 정부는 국민 개개인에 대해 보다 자세하고 광범위한 신상정보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개인정보들에 공무원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상상해 보자면, 공무원의 업무처리에 불만이 있어 인터넷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그날 저녁 그 공무원으로부터 "당신 말이야, 2년 전에 비뇨기과에는 무슨 일로 갔어□" 라는 전화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정보의 불균형은 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약 전자정부를 명목으로 수집된 통합되고 포괄적인 개인정보 데이터가 공무원이나 정부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면 국민 개개인은 조금 넓은 새장에 갇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단계에서 시민의 개인정보 운용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함께 그 감시자 역할에 국가뿐 아니라 시민사회 영역도 참여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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