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를 찾아서] 2.서산 마애삼존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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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당진에서 서산쪽으로 가다 오른쪽 6백47번 도로로 꺾어가다보면 서산마애삼존불 표시와 함께 6백18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봄빛이 차오른 고풍저수지를 옆으로 보면서 조금 가다보면 서산 마애삼존불로 향하는 샛길이 나오고 이내 왼편으로 잘 생긴 소나무 몇그루를 이고 있는 큰 암벽 한 켠에 작은 전각이 보인다. 바로 마애삼존불상(국보 84호)이 있는 곳이다.

계단을 올라 전각문을 열면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세 부처가 보인다. 부풀어 오를 듯 통통한 뺨, 약간 들린 동글동글한 코, 도톰한 입술, 얼굴 가득한 맑고 티없는 미소. 1천4백년전 백제의 석공이 깎아지른 돌벽에 불어 넣은 따뜻한 숨결이 지금까지 전해 느껴진다.

'백제의 미소' 란 표현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가운데 연화대좌 위에 선 이가 석가여래다.목에 윤회를 상징하는 세겹의 주름(삼도.三道)이 없는 고식(古式)이다. 머리 뒤의 광배는 연꽃과 불꽃(화염문.火炎紋)으로 장식됐다.

오른손은 들어 바닥을 앞으로 보이고 왼손은 내려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오른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시무외인(施無畏印), 왼손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여원인(與願印)이다.

별개의 수인이지만 삼국시대부터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 예가 많다.학자들은 더 많은 것을 베풀려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런 손 모양은 석가여래뿐 아니라 아미타불.약사불.미륵불.관음보살에서도 두루 나타나 통인(通印)으로 불린다.

특히 여원인을 취한 왼손의 넷째,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보이는 우리 나라 불상의 특징이다.

오른쪽에-방향을 말할 때는 주불(主佛)의 입장이 기준이다-동그란 구슬을 쥐고 있는 불상은 아직 어떤 부처인지 확정되지 않았다. 제화갈라보살이라는 설명도 있고 관음보살이란 해석도 있다.

제하갈라보살은 연등불(燃燈佛). 아득히 오래전 다섯 송이의 연꽃을 올린 선혜(善慧)에게 내세에 석가모니로 태어날 것을 알린 부처다.

왼쪽 반가부좌로 앉은 부처는 미륵보살이다. 두 팔에 큰 손상을 입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런 미소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한 미륵보살은 석가 열반후 56억7천만년 후에 성불(成佛)해 중생을 제도하리란 언약을 받았다.

과거의 제화갈라, 현세의 석가모니, 미래의 미륵을 한 자리에 모아 부처의 자비는 한결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유물이다.

인도의 석굴사원에서 시작된 마애불이 서역(西域).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은 6세기말 경. 백제를 통해서다. 지금 남아있는 백제의 마애불은 단 3구뿐이다. 예산의 사면석불, 태안의 마애삼존불, 서산의 마애삼존불이다.

지도를 펴고 살펴보자. 이들 마애불이 남아있는 곳은 중국 산둥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태안반도를 지나 서산.예산.공주.부여로 가는 옛길 위에 자리잡고 있다. 석불, 특히 마애불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까닭은 이리저리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괜히 그 곳에 서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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