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대만의 정신적 독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만사람들이 총통선거에서 성취한 것이 중국의 긴 역사상 선거를 통한 최초의 정권교체인 것은 사실이다. 대만의 민주주의가 정치개혁 10년 남짓 만에 포청천(包靑天)을 자처하는 개혁지향적인 야당후보를 차기 지도자로 뽑을 만큼 성숙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 대선에서 여야 정권교체 못지않게 소중한 중국 본토로부터의 '정신적인 독립' 을 쟁취했다. 천수이볜(陳水扁)의 민진당(民主進步黨) 강령은 하나의 중국론을 부정하고 대만의 독립을 주장한다.

당연히 중국은 陳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선거기간 중에 '대만백서' 라는 것을 발표하면서까지 통일협상을 무작정 기다릴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것은 대만 유권자들에게 陳을 당선시키면 대만해협에는 대륙에 의한 무력행사를 포함한 심각한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무서운 위협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3천달러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의 과실을 즐기는 대만사람들에게 베이징(北京)의 강경론자들이 날린 바람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만판 북풍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바보짓으로 4년 전의 역사가 되풀이됐다. 1996년 총통선거때 중국의 미사일 위협을 받고 오히려 리덩후이(李鄧輝)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던 대만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중국이 반대하는 후보를 당선시켰다.

지난 1월 타이베이에서 만난 陳의 친구이면서 선거참모의 한사람인 린자청(林嘉誠)교수(정치학)는 무소속의 쑹추위(宋楚瑜)후보와 여당인 국민당의 롄잔(連戰)후보가 전통적인 국민당 지지표를 양분하면 陳후보가 최소한 35% 득표로 당선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결과적으로 林교수는 宋의 득표력을 과소평가했다. 대륙에서 불어온 북풍이 대만 민심의 거센 반발을 불러 선거를 앞둔 1주일 사이에 陳의 지지율을 5~10% 높여주지 않았다면 총통선거의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대만사람들은 중국의 내정간섭에 크게 "노(No)" 라고 말했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노선과 독립에 대한 대만의 희망을 조정해 대만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베이징과 타이베이의 정치력에 달렸지만 그 이전에 대만 백성들은 중국이 어떤 위협을 가해와도 자신들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정신적인 독립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중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와 96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못한 결과 앞으로의 대만정책에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크게 좁히는 결과를 자초하고 말았다.

장쩌민(江澤民)은 일본과의 관계에 언급할 때는 지난 일을 잊지 않으면 앞으로의 일에 교훈이 된다(前事不忘 後事之師)라는 그럴 듯한 문자를 썼는데 대만관계에서는 중국 지도부의 총명이 크게 흐려진 것 같다.

陳의 당선으로 중.대(中臺)관계의 악화와 대만해협의 위기를 점치는 걱정의 소리가 높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중.대관계에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陳진영은 선거운동기간 중 대만독립의 노선에서 크게 후퇴했다.

그가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독립을 선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자신과 대륙 지도자들의 상호방문을 통한 대화를 제의한 것은 오히려 건설적인 대화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陳의 입장이 후퇴했어도 대만문제는 당장의 현안으로 떠 올랐다. 대만의 유권자들은 대만문제, 나아가 중국 통일의 문제를 논의의 장(場)으로 끌어내는 일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논의결과와 시기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는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江이 대표하는 강경론자들과 주룽지(朱鎔基)의 온건.실용주의자들간의 경쟁이다.

1백44억달러에 달하는 대만의 본토 투자와 연간 2백억달러가 넘는 홍콩을 통한 무역이 朱의 원군(援軍)이 될 것을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