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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잃은 아시아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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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활력이 넘칠수록 더 기능저하에 빠진다.

빈약한 근거로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한국의 야당이 그렇다. 국민당이 장악한 의회에 법안을 통과시키려다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대만의 천수이볜(陳水扁)총통도 마찬가지다.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도 같은 경우다. 첫번째 임기 중 진퇴양난에 빠지고 두번째 임기 땐 아르헨티나처럼 추락하지 않기 위해 재정개혁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모두가 마비된 아시아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다. 불신과 잠재적인 폭력, 경제 침체 등에 둘러싸인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만성적인 정체에 직면해 있다. 정체된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47년 파키스탄이 건국된 이래 이 나라에선 선거를 거쳐 뽑힌 어떤 정부도 임기를 마칠 수 없다.

아시아의 문제는 프랑스에선'내각 동거'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서 생겼다. 직선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정치적 경쟁자가 장악한 의회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모양새가 원인이다. 성숙한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에선 삼권분립 정부의 견제와 균형이 잘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선 다르다. 한개의 기관에 행정권과 입법권을 동시에 넘기지 못하면 종종 중대한 문제가 생긴다. 특히 이런 나라의 정부가 과격한 정치.경제 개혁을 강행하려 할 때 곧잘 실패가 나타난다. 직선제에 의해 뽑힌 대통령은 뭔가 하기를 원하지만 의회는 필요한 법률을 승인해주지 않는다.

이런 패턴은 의회의 교착에서 시작한다. 무능한 지도자는 실패의 책임을 의회에 돌린다. 의원들은 경쟁 정파 출신의 대통령을 비난한다. 들끓는 여론은 정치적 파열을 봉합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희구한다.

1970년대 인디라 간디의 긴급 통치는 부분적으론 이런 제도적 기능 마비의 결과다. 분열된 정부는 분리주의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스리랑카의 경우 평화정착을 위한 중대한 시점에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정적의 정치적 행동에 격분한 나머지 장관 세명을 퇴진시키고 4년이나 앞당겨 재선거를 요청했다. 민주적 분파의 유일한 수혜자는 잔혹한 '타밀호랑이'반군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네팔에서도 공산 반군은 정권을 놓고 다투는 군주와 의회의 분열을 이용했다.

사실 불안정하긴 해도 아시아 민주주의는 파키스탄.부탄의 군부 독재나 중국.베트남의 공산당 일당독재보단 낫다. 하지만 약화된 민주주의의 위험성은 봉쇄된 의회나 비효율적인 정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야심차지만 뒤틀린 대통령들은 비헌법적인 수단에 쉽게 경도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태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는 탁신 시나왓 총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올해 선거에서 드러난 폭넓은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아시아의 정책 결정자들은 동거 내각을 청산할 때의 이점과 선거에서의 승리가 진정한 현실 권력이 되는 시스템을 채택할 때의 장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의회민주주의는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여당이 장기간 의회를 장악한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도 한국이나 대만처럼 건전한 정치문화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이나 인도 같은 내각책임제에선 의회 내 다수 의석을 잃을 때까지 총리가 안정되게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의회를 술책으로 장악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책의 질적 우수성으로 정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시스템은 꼴사나운 대치를 낳은 대만의 동거 내각 같은 형태보다 더 효율적이고 정치적으로 안정돼 보인다.

반면 분열된 정부에 드리운 위험은 난타전을 벌이는 의회보다 더 크다. 인도네시아의 20일 선거에서 야당 출신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교착의 위험이 있다. "분리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고 말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옳았다.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많은 나라에서 제도적 재건이 필요하다.

초우드후리 인도 대학 명예교수
정리=정용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