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패트롤] 제조업체 '힘겨운 주총'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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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주 월요일 경제섹션의 머릿기사는 '그리드(grid)' 라는 이름을 가진 차세대 인터넷 개발소식이었다.

격자모양의 망을 뜻하는 그리드는 미국.영국 등 40개국 과학자들이 공동 개발중인 것으로, 현재의 인터넷보다 훨씬 간편하면서도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하게될 전망이다.

자고나면 새로워지는 새천년 인터넷 세상은 이처럼 지난주에도 눈부신 속도로 진화해가고 있다.그러나 인터넷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고민꺼리들이 아직 세상에는 널려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기름값이 좋은 예다.

지난주 초 한국은 물론 공업화를 이룬 선진국들은 배럴당 최고 34달러선까지 넘어선 국제유가 폭등소식에 떨었다. 원유 자체가 한정된 자원이긴 하지만 최근의 유가상승은 산유국들의 감산 때문이다. 다행히 사우디아라비아등 주요 산유국의 증산소식에 유가는 지난주말 다시 배럴당 30달러선 아래로 내려섰다. 그러나 오는 27일 석유수출국기구(OPEC)회의가 증산을 공식 결의하지 않는한 국제유가는 안심하기 어렵다.

요즘 유행어로 '아날로그형' 경제의 원동력인 유가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진 않았다.10여년전만해도 배럴당 34달러면 '오일쇼크' 를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주 미국과 한국의 디지털경제를 대표하는 나스닥과 코스닥시장은 기름값에 아랑곳하지 않은채 각각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대세(大勢)란 이처럼 도도한 것인가. 기름값보다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미국 연준(聯準, FRB)의 금리인상여부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 국내기업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주주총회다. 12월 결산법인들의 주총은 2백28개사가 한꺼번에 주총을 치르는 17일에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지난해처럼 삼성.현대 등 5대그룹 상장사들과 소액주주 대표격인 참여연대간의 불꽃튀는 공방전은 올해는 재연되지 않을 전망이다.

대신 주주들이 주가에 대한 불만을 예년에 없이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증시에서 인기가 없는 '굴뚝산업' 상장사일수록 힘겨운 주총을 치르고 있다.

금융기관들에게는 이번주중에 결정될 국민은행장이 가장 큰 관심사다.

새 은행장이 은행 내부인사일지, 외부인사일지가 올해 은행 주총의 향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행장후보를 선임하게될 국민은행장 후보추천위원회의 결정이 주목된다.

올해 주총을 치르는 회사 열개중 4개사 꼴로 인터넷.정보통신.생명공학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고 있다. 사람.돈등 자원도 빠르게 이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이런 바람이 자칫 소수 엘리트들의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효과적인 감시방안도 생각해야할 시점이다. 공교롭게도 차세대 인터넷망이라는 그리드는 탐욕(greed)이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다.

손병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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