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박영훈의 대마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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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본선 16강전> ○ 박영훈 9단 ● 왕야오 6단

제10보(121~131)=박영훈 9단의 별명은 어렸을 때는 ‘송아지 삼총사’였다. 두각을 나타내면서 ‘어린 왕자’가 됐고 ‘제2의 신산’이 됐지만 그냥 소리 소문 없이 따라다닌 별명이 또 있는데 바로 ‘순둥이’였다. 얼굴이 순하고 일상에서도 순하고 바둑판 위에서도 순한 탓이었다.

한데 지금, 박영훈의 움직임은 초 무리의 극렬함을 띠고 있어서 구경꾼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할 말을 잊고 있다. 백△ 때만 해도 이쯤 하나 던져 두고 대마를 살리러 갈 줄 알았다. 그러나 박영훈은 대마는 까마득히 잊은 듯 124로 움직이더니 아예 128로 하변 흑을 잡으러 간다. 검토실에서 연방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박영훈이 괜히 도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마를 공격해 온다면 A일텐데 백은 그냥 이을 수도 있고 B의 타이밍을 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쉽게 죽지는 않는다고 박영훈은 보고 있었다(여기에 오류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128은 박영훈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심했던가 보다. 그는 국후 128을 패착으로 지목하며 ‘참고도’의 수순을 제시했다. 백1과 흑2 하나만 교환하고 실전 수순을 밟았으면 여유가 있었다고 후회했다. 131까지 진행된 이상 백이 C로 끊고 하변을 잡는 것은 필연인데 중앙 대마는 더 위험해졌다. 문자 그대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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