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엿보기] EBS, 다큐멘터리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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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제일 멋진 건 '띵띠리띵띠리링' 하는 '큰홀쭉귀뚜라미' 의 노랫소리입니다. 그 다음은 '긴꼬리' 지요, '리리리리' 하는. '찌-찌' 하는 거요? 중베짱이입니다."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이렇게 다채로운 것이었을까. 도시가 만들어 내는 소음에 지친 귀를 위로해 줄 EBS의 특집 자연다큐멘터리 '풀섶의 세레나데' 가 10일 밤8시 방송된다.

풀벌레가 태어나서 짝을 짓고 알을 낳기까지 한해살이를 화면에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청각적 요소를 전면에 내건 점이 새롭다.

10여분동안 일체의 나레이션없이 귀뚜라미.여치.중베짱이.삽사리 등 20여종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를 메들리로 들려줄 정도다.

주로 수컷 풀벌레가 연주하는 이 소리의 정체는 암컷을 부르는 구애의 음향. 흔히 표현하듯 '울음소리' 가 아니라 '세레나데' 란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연출.촬영을 맡은 이의호씨는 본래 미술팀으로 EBS에 입사, 1992 '누에의 생애' 에서부터 카메라맨으로 자연다큐 제작에 참여하다 이제는 연출까지 겸하는 자연다큐멘터리 전문 '카메듀서' 다.

지난해 EBS.KBS에서 연달아 전파를 탄 다큐멘터리 '논' 으로 2일 일본에서 폐막된 제8회 지구환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논' 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3만2천달러에 해외방송권을 가계약, 그동안 자연다큐멘터리제작을 꾸준히 지원해온 EBS를 뿌듯하게 했다.

그가 풀벌레 소리에 매료된 것도 '논' 을 촬영하면서부터. 하지만 막상 풀벌레가 무성한 풀섶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농약.제초제 등이 뿌려지기 때문이었다. '풀섶의 세레나데' 는 제주도 어리목의 무덤가에서 주로 촬영했다.

'출연진' 이 아무리 많아도 다같은 풀벌레이고 보면 자칫 단조로와지기 쉬운 일. '풀섶의 세레나데' 는 저속 촬영.고속 편집 기법을 통해 새싹이 움트는 장면, 풀벌레가 알을 낳는 장면, 알에서 깨어난 유충이 어른 벌레가 되는 과정을 한결 생동감 있게 전한다.

풀벌레들의 날개가 소리를 내는 원리, 다리의 청각기관이 사람의 귀처럼 이 소리를 알아듣는 구조 등은 전자현미경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특수렌즈를 사용해 1㎜남짓한 알에서 속살 투명한 어린 벌레가 깨어나는 과정을 화면 한가득 보여주기도 한다.

제작진은 "무심한 사람들에게는 하찮은 벌레이지만, 이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운명체" 라고 강조했다.

이후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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