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등수 매기는데 왜 이리 재미있는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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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타 캐스팅으로 인생 역전한 스타 1위는? 여심을 뒤흔드는 ‘옴므 파탈’ 1위는? TV가 내놓은 ‘정답’은 각각 장동건(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코너 ‘대한민국 스타 랭킹’)과 이병헌(Mnet ‘와이드 연예뉴스’)이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정색하고 흥분하지 말 것. 어차피 재미로 하는 ‘쇼’니까. 그런데도 ‘연기대상’이나 되는 듯 최종 순위에 촉각이 곤두서고 눈길을 뗄 수 없다. ‘타인의 취향’이 때론 궁금하고 때론 짜증스럽다. 순위 매기는 토크쇼가 요즘 TV를 휩쓰는 이유다.

무한경쟁 시대, TV에서도 각종 순위를 정하는 ‘랭킹 프로그램’이 인기다. 미혼 여자연예인 10명이 출연하는 ‘순위 정하는 여자’. [QTV 제공]

◆생각 비교하는 재미=10명의 싱글 여자연예인이 고정 출연하는 ‘순위 정하는 여자’(QTV 매주 목 밤 11시)는 1명의 발표자가 그날의 주제에 맞춰 10명의 순위를 매긴다. 이를 미리 조사한 20~40대 남성 100명의 앙케이트와 비교해 결과가 일치하면 1000만원의 상금을 탄다. 일본 아사히TV의 인기 프로그램 ‘런던 하츠’의 한 코너를 판권 구매했다. 1회 주제는 ‘애인과 헤어지면 복수할 것 같은 여자’. 발표자 현영이 뽑은 1위는 김가연으로, 일반인 앙케이트 1위 솔비와 차이를 보였다.

순위를 조사하는 대상은 프로그램마다 다르다. ‘대한민국 스타 랭킹’은 연예부 기자·시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KBS2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 코너 ‘이상형 월드컵’은 출연자가 토너먼트 방식으로 후보를 떨어뜨려 승자를 가린다. 아무리 하찮은 질문이라도 결국 관심은 ‘누가 1위냐’하는 것. 32강부터 후보를 떨어뜨려가는 ‘이상형 월드컵’은 단계가 진행될수록 긴장감마저 자아낸다. MBC ‘무한도전’이 ‘정준하의 야식 월드컵’으로 패러디할 정도다.

‘샴페인’의 권용택 PD는 “사람을 놓고 고르는 컨셉트가 처음엔 거부감을 줄까 걱정했는데, 시청자들이 게임 보듯 즐기는데다 신변잡기 토크와 차별화돼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샴페인’은 12월 중순 개편 때 시간대를 옮기면서 코너 확장도 검토 중이다.

◆재활용 효과 만점=별별 순위 매기기의 원조는 Mnet이 방영했던 ‘재용이의 더 순결한 19’다. ‘코디를 울게 만드는 스타들의 같은 옷 다른 필(feel)’ ‘최고 쇼킹 생얼’ 등을 기상천외한 랭킹쇼를 구성했다.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이미지만 갖고 갑론을박하는 ‘랭킹 토크’다. 연예인들의 ‘캐릭터’가 뚜렷해진 때와 맞물린다. ‘가장 집착이 심할 것 같은 여자’로 뽑힌들, 그게 연예계 안에서 차별화하는 효과가 있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제작진 입장에선 ‘시청자 몰입도’가 높은 게 강점이다. ‘Mnet 와이드 연예뉴스’가 주간 특집으로 방송하는 ‘수퍼100’의 경우 100위부터 1위까지 순위를 25회씩 끊어 4주에 걸쳐 방송한다. 매회 1시간 방송할 동안 중간광고가 나와도 마지막까지 보게 된다. 타인의 취향과 자신의 선택을 비교하려는 심리다.

스타가 출연하지 않아도 마치 나온 듯한 효과도 강점이다. ‘이상형 월드컵’의 경우 한번도 출연하지 않은 손예진이 세 차례나 1위에 뽑혔다. 예전 방송 자료를 재활용하면 예능프로 출연을 꺼리는 특급배우들을 ‘간접 출연’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순위 조정도 종종 발생한다. MBC ‘섹션통신 연예통신’에서 ‘별별랭킹’을 담당했던 작가는 “다양한 패널에게 조사해도 상위권은 예상답변대로”라며 “중복 순위가 발생하면 아무래도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스타를 높이 올리게 된다”고 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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