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90년대식 감성의 작가 윤대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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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990년 등단해 '90년대식 감수성으로 글을 쓴다' 는 평을 받아온 소설가 윤대녕(39)씨는 서울서 1시간 가량 떨어진 일산에 살고 있다. 독신인 그가 혼자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는 한동안 비워둔 집처럼 썰렁하지만 잘 정돈돼 있었다.

실제로 작가는 수시로 집을 비운다. 집으로 찾아간 날도 강원도에서 막 돌아온 길이었다. 그냥 2박 3일 동안 혼자 차를 몰고 강원도 바닷가로 달려갔단다. 그는 길위에서 글을 만드는 사람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쓸거리들이 막 떠오르고 창작의욕도 솟아납니다. 돌아와 그걸로 글을 쓰고, 다시 길을 떠나고…. "

그러다보니 한반도의 남쪽은 구석구석 가보지않은 곳이 없다. 제주도, 그 중에서도 성산포 앞바다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외국여행에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북서부 오지를 돌아본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원시적인 대륙의 황량함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강렬한 눈빛이 '인간' 과 '자연' 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한껏 풀어헤쳐본 윤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작은 아파트에 자신을 가둔다. 술로 망가진 몸을 위해 근처를 산책하는 외에 가능한 외부와의 접촉을 줄인 채 글쓰기에 몰두한다. 큰 방은 집필실, 작은 방은 침실, 응접실은 휴식공간이다.

그의 휴식은 클래식 음악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응접실을 가득 메운 것은 오래된 LP판과 새로 사모은 CD, 그리고 그 사이에 오래된 마란츠 전축과 새로 산 미니 컴포넌트 오디오가 나란히 놓여있다.

극적이고 웅장한 베토벤을 좋아하고 최근에는 일본의 카운터 테너(가성으로 여성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내는 남자 성악가) 메라 요시카스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글쓰기가 자신을 소모하는 느낌이라면, 음악감상은 마음속에 뭔가를 차곡차곡 담는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한참 글을 쓰다가 쉴 때는 음악을 듣지요. "

그는 작품을 그렇게 많이 발표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등단 10년을 넘기면서 올해부터는 좀 더 많은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다. 연초부터 지방신문에 연재소설을 시작했고, 3월부터는 사이버공간에 도전해 인터넷(enzone.joins.com)에 연작소설 연재도 시작했다. 문예지에도 철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작정이다.

그는 "소설은 예쁘지 않지만 같이 살아야할 아내와 같고, 인터넷은 싫지만 피할 수 없는 지옥" 이라며 "글쓰고 인터넷을 배우려면 아무래도 올해는 여행을 자주 못할 것 같다" 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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