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고생과 도전이 행복의 원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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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35면

12년간의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1998년 한국에 돌아와 내가 처음 근무한 곳은 경기도 안산의 한국해양연구원이다. 그곳을 택한 이유는 딱 하나. 과학탐사선 온누리호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먼바다에 대한 탐사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선진 외국들의 얘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첨단 과학 장비를 갖춘 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미국으로 유학 길을 떠난 나는 거기서 먼바다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그것을 잡았고 결국 실용적이고 돈이 되리라 여겨졌던 연안환경을 공부하겠단 애초의 마음을 접고 깊은 바닷속 화산과 지진을 연구하는 순수학문의 길을 택했다. 솔직히 전공을 바꾸면서 마음속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포기했었다. 왜냐하면 대양 연구가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했기에. 그런데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라던가.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가 계속 무역흑자를 보이자 선진국들은 자국 상품을 구매하라고 압력을 넣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백억원대의 연구선을 들여오게 된 것이다.

On Sunday 기획칼럼 ‘당신이 행복입니다’

길이 64m, 너비 12m, 35명이 한 달간 생활할 수 있는 온누리호는 대양탐사선치고는 작은 배에 속한다. 하지만 해저의 신비를 밝힐 수 있는 최신 지구물리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는 해저의 모습을 마치 첩보위성이 먼 상공에서 지형을 그려내듯 관찰하는 음향장비가 있었고 또 음파로 지구 내부를 투시하는 장비도 있었다. 내가 탄 어떤 외국 배들보다도 최신예였다. 온누리호 소식을 미국에서 처음 접한 나는 나라가 나를 위해 이 배를 사왔구나라며 환호했고 드디어 한국에 가도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생을 해 본 사람만이 그 열매의 단맛을 안다. 미국에는 전문가가 많다 보니 나 같은 대학원생은 서열상 맨 아래다. 참고로 연구선 하루 사용료는 2000만원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은 촌각을 다투어 24시간 교대로 진행되고 책임을 진 수석 과학자의 스트레스는 자연히 아랫사람들에게로 전달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바다에 가는 것이 낭만적이라 할지 모르나 내 경험으로 볼 때는 어떤 신분으로 가느냐에 따라 다르다. 윗사람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탐사기간 한 달 내내 긴장 속에서 좁은 공간에서 보내야 했던 내게 연구선은 노예선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온누리호를 몰고 처음 나갔을 때의 흥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호랑이가 없는 숲 속에서는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고 드디어 내가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이 분야를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들어온 지 18년 만의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을 많이 본다. 나는 그들에게 가장 고생하고 노력한 것을 나중에 가장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상묵 교수는 2006년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목 아래 전신을 쓸 수 없게 됐다.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강단에 복귀,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대의 스티븐 호킹 교수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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