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 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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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
루츠 폰 베르더·바바라 슐테 슈나이니케 지음
김동희 옮김, 들녘, 311쪽, 1만3000원

처음 글쓰기를 가르칠 때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교실을 꽉 채운 해맑은 눈동자가 모두 극단적인 열등감에 얼룩져 있었다. 저는 글쓰기 못하는데요, 저도요, 저도 …. 자포자기의 합창만 들려왔을 뿐이다. 오, 맙소사!

교실문을 나선 뒤 글쓰기 지도에 관한 온갖 책들을 찾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허술한 이론들이 그저 나열되어 있을 뿐 글쓰기를 재미있고 알차게 공부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은 찾기 힘들었다. 결국 모자란 머리를 움켜잡으며 스스로 아이디어를 짜낼 수밖에 없었다.

『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는 글쓰기 지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현장에서 즉각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가 풍부하게 소개되고 있다. 거의 매 쪽 제시되는 글쓰기 방법과 전략은 도움말과 연습활동이 덧붙여져 참신하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부치지 않을 편지’를 써보라. 당신이 화난 이유를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정신없이 빨리 써보라. 1년 후 지금을 상상하며 글을 써보라.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 기억나는 꿈에 대해 써보라.

물론 그중에는 ‘오늘은 거짓말만 써보라’든지, ‘당신 스스로 눈물을 흘려 이 세상을 눈물로 덮어보라’‘스스로 결심하고 새롭게 정신적 여행을 떠나보라’같이 모두가 쉽게 공감하며 따라하기는 어려운 조언도 있다. 하지만 작문 이론 소개에 급급하여 글쓰기를 지도하는 사람이나 공부하는 사람 모두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책들과는 확실히 차별된다.

지은이 루츠 폰 베르더와 바바라 슐테 슈나이니케는 오랫동안 창조적인 글쓰기 교육에 앞장서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이 책 역시 많은 워크숍을 거쳐 검증한 성과라고 밝히고 있다.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 이 책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모아 놓은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인문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공부하려는 사람 본인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면서 조언하는 지은이들의 태도가 돋보인다. 다시 말해 글 자체를 중히 여기며 문장 건축론을 강독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설명함으로써 글쓰기가 바로 인간다운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저자들은 글을 쓰는 주체로서 ‘나’라든지, 대상이자 결과가 되는 ‘세계’,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발상법, 발상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방법, 정리된 발상을 실제 글로 길어 올리는 방법, 글을 쓸 때의 장애를 해결하는 방법 등 텍스트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차원에서 글쓰기 교수법을 개발하고 심화하고 있다. 이 책을 모두 6개의 장, 즉 창조적인 글쓰기를 위하여, 창의력을 키워주는 글쓰기,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나를 찾기 위한 글쓰기, 글을 쓸 때 나타나는 기회와 위기, 글쓰기 모임 만들기 등으로 크게 나눈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창조적인 글쓰기야말로 자기 표현의 즐거움, 나아가 인간다운 삶의 확인이자 실현이다. 저자들이 ‘쓰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읽기와 생각하기, 느끼기, 말하기, 듣기, 그리기, 기억하기, 꿈꾸기, 명상하기, 여행하기 등 인간 삶의 온갖 행위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도 이를 잘 보여준다.

기존의 딱딱한 글쓰기 책에 질린 적이 있다면, 그리고 아직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다면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면 좋겠다. 곳곳에서 던지는 질문 가운데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처럼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 대목이라면 설렁설렁 넘기다가 마음에 다가오는 아이디어와 조언이 있다면 푹 빠져들어 보자. 채팅과 문자 메시지만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허병두(숭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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