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 추모공원, 한국계가 설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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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아메리칸항공 77기가 미 국방부 청사를 들이받으면서 184명이 숨졌다. 그들을 추모하는 2500평 규모의 펜타곤 메모리얼 기념공원이 국방부 청사 근처에 만들어진다.

3000만달러(약 360억원)를 들여 2006년 가을까지 완공된다. 그 설계와 시공을 한국계 미국인 제프 리(49.사진)가 맡았다. 그는 펜타곤에서 10km가량 떨어진 워싱턴시 동부의 킹먼 섬에 1만2000평 규모로 세워질 '메모리얼 그로브(추모의 숲)'도 설계하고 시공한다.

메모리얼 그로브는 '자연은 스스로 슬픔을 치유해간다'는 동양적 생각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숨져간 자리에도 시간이 지나면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 아름다운 숲이 됩니다. 슬픔은 새 생명의 탄생으로 극복되는 것이죠. 그런 순리를 형상화한 것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봅니다. " 그는 "펜타곤 희생자 중에는 한국계 미국인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싶다"고 서툰 한국말로 덧붙였다.

제프 리는 전미조경학회가 수여하는 상인'메리트 어워드'를 두 차례나 받은 일급 조경전문가다. 1996년 재단장된 워싱턴의 한국대사관저 정원도 그의 작품이다. 미국 조경학회 전문지인'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지난 7월호에서 이 정원을 크게 다루며 '미국 토양 위에 한국적 아취가 어우러진 수작'이라고 칭찬했다.

서울 출신인 제프 리는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9세 때 도미했다. 78년 버지니아대 조경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취직 대신 한국을 찾았다. 뿌리를 찾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중동 진출이 한창이던 한국 건설업계는 국내에 전무한 조경전문가의 등장을 환영했다. 그는 두바이로 날아가 국내업체가 시공 중이던 대형호텔의 조경을 맡았다. 2년 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TAC 등 유명 조경회사를 거쳐 86년 자신의 설계회사 '리 앤드 어소시에이트'를 설립, 워싱턴 시내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내년엔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에서 카바 신전에 이르는 1.5km 길이의 대형 순례로 시공도 맡는다. 순수 대리석으로 지어지는 이 길의 공사비는 천문학적이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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