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돈벌이 이야기'에 너무 치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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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수년간 우리는 극히 심각한 사회적 상황변화 하나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시장논리가 전체 사회에 침투하고 확산함에 따라 시장의 지배와 조작에서 벗어난, 혹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적 공(公)영역들이 크게 축소.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시장논리의 지배력을 벗어난, 혹은 시장 조작(manipulation)의 대상으로 함몰되지 않은 사회 공영역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과 학문, 교육과 매체, 그리고 공공의 사회제도 등 모든 영역들은 지금 빠른 속도로 거리낌 없이 '시장의 신(神)' 에게 투항하거나 투항을 종용받고, 그의 명령 외에는 어떤 분별에도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하는 전면적 복속(服屬)의 조건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시장논리의 지배가 확립되는 사회를 '시장 전체주의 사회' 라고 규정할 때, 지금 우리는 시장논리를 '유일논리화' 하는 유례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시장 유일 체제를 추구하는 사회는 '정치 전체주의' 못지 않게 위험하고 파괴적인 사회다.

시장논리가 사회문화적 공간까지 장악하고, 중요한 공영역적 가치들이 시장논리로 재단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사회수성원들도 돈과 소비 이외의 어떤 가치규범으로 생존의 의미를, 자기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을까.

중.고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실파괴' 현상은 시장논리의 사회지배, 돈의 우상화, 오락.소비문화의 확산이라는 우리 현실과 결코 무관치 않다.

신문은 시장조작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야 하는 사회적 공영역의 하나일 뿐 아니라 공적 공간의 위축을 막아내야 하는 공론의 장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신문들은 대체로 '시장에서의 성공' 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스스로 함몰돼 있을 뿐 아니라 그 가치의 유일화를 선도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스톡옵션으로 누가 얼마를 벌고 무슨 벤처사업으로 누가 어떻게 성공했고 인터넷 돈벌이가 어떻고…. 이런 얘기들로 하루를 지고 새는 것이 우리 신문이다.

신문들은 자라는 세대에게, 그리고 사회 성원들에게 광고 메시지, 오락소비문화, 돈벌이 성공담말고 어떤 의미 있는 가치준거의 틀을 얼마나 제시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일보 2월 16일자 오피니언 섹션이 세수잉여금의 사용처를 놓고 마련한 토론 지면은 20일 밤 공영 텔레비전(KBS)의 토론을 유도한 의미 있는 기획이라 평가할 만하다.

3조5천억원에 달한다는 세수잉여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문제에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한쪽에서는 절대빈곤층을 돕고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짜는 데 그 돈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다른 한쪽에서는 국고부채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있다.

사용처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공론장으로서의 신문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의미 있는 것은 신문이 이런 공적 이슈 자체를 의제화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빈곤의 문제는 심각하다. 정부 계산으로는 약 4백만명, 다른 민간 기구들의 조사에서는 8백50만명에서 1천2백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빈곤 인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그동안 '돈벌이 이야기' 에 눌려 마치 '없는 문제' 인양 사회적 관심권 밖으로 추방돼 온 것이다. 빈곤 그 자체는 새로운 뉴스가 아닐지 모른다.

우리사회 빈곤층의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나 돈벌이 이야기에만 관심을 쏟고 다른 중요한 사회 문제를 의제화하지 않는 것은 신문의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 부채의 경우에도 문제 자체를 '공론화'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2월 17일자 31면의 "인터넷 세상 '또다른 감옥' " 이라는 기사도 인터넷 시대의 문제점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토론 지면의 기획 못지 않게 문제의 심각성을 심층 보도하거나 분석하는 작업이 수반됐어야 했다는 점이다.

공적 문제는 단순 토픽이 아니며 그냥 "이런 문제도 있다" 는 식으로 진열하고 넘어갈 문제도 아니다.

도정일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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