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엄마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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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여년 전 한 아동학자가 중년층 이상의 시골 부인들을 대상으로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의 수유(授乳)상황을 조사한 일이 있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통사회에서 우리 산모(産母)들은 대개 신생아에게 왼쪽 젖을 먹인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에 응한 시골 부인들은 대부분 시어머니나 집안 안노인들로부터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 왜 그래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응답했으며, 몇몇 부인들만이 왼쪽으로 안고 왼쪽 젖을 먹이면 오른손으로 다른 잔일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다.

전통사회의 이런 관습을 이 학자는 '벽사(□邪)' 의 의미로 파악했다. 곧 왼쪽이라는 방위는 사귀(邪鬼)를 물리친다는 전통적 믿음이 그런 관습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 학자는 왼쪽 젖을 먹이는 관습이 현대의 발달심리학적 측면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큰 수유방식으로 간주했다.

태아는 태내에 있는 동안 모체의 대동맥을 통해 양수에 전달되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자라기 때문에 출생 후에도 왼쪽에 안겨 왼쪽 젖을 먹으면 그 친숙한 소리를 다시 들어 만족감을 느끼고 모자관계의 신뢰감 형성에 하나의 기틀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수유방식에 대한 전통사회의 관습이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음은 아기를 낳은 지 사흘이 지날 때까지는 가급적 엄마의 초유(初乳)를 먹이지 말라는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조선시대 부녀자의 생활지침서인 '규합총서(閨閤叢書)' 가 본보기다. 이 책에 따르면 산모의 젖은 출산한 지 하루에서 사흘은 지나야 비로소 유즙이 제대로 나오므로 그동안은 아기에게 모유 대신 밥물이나 꿀물 따위를 먹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현대의학에서도 첫아기를 출산하는 경우에는 젖꼭지가 젖을 먹이는 데 알맞게 발달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 내지 사흘 정도의 기간이 팔요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산모의 젖꼭지가 함몰된 경우에도 그것을 돌출시키는 데 그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산모의 초유에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허용기준치의 30배나 검출됐다는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다.

물론 "모유 수유기간인 출산 후 6개월간 매월 다이옥신 양이 12%씩 줄고 단기간 다이옥신을 섭취한다 해도 독성을 일으킬 수 있는 체내 부하량이 증가하지 않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지만 산모나 그 가족의 입장이 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엄마젖을 먹이는 게 좋다는 통설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몇년 전 생후 6개월을 기준으로 엄마젖 먹이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 28.8%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왔지만 이번 다이옥신 파문이 그 비율을 더욱 떨어뜨리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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