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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바탕 브라질 영화 '카란디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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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카란디루’의 바벤코 감독은 인간의 욕망이 극렬하게 드러나는 감옥을 주목한다.

담벼락 하나 사이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 감옥에서도 사람들은 사연을 만들어낸다. 한 감방에 갇힌 정치범과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그린 '거미 여인의 키스'로 명성을 얻은 헥터 바벤코 감독은 그래서인지 '루치오 플라비오''피쇼테' 등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왔다.

그의 신작 '카란디루' 역시 브라질 상파울루에 2002년까지 있었던 감옥의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다. 수용인원은 3500명이지만 두 배 이상의 죄수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것이다.

영화는 의사 드라우지우 바렐라(루이스 카를로스 바스콘셀로스)가 카란디루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성애와 칼부림이 난무하는 난장판에서 그는 유일하게 조용히 죄수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보석상을 털었지만 실수로 동료를 죽인 후 다른 동료의 밀고로 감옥에 들어온 에보니, 감옥에서 백년가약을 맺는 동성 커플 레이디와 투배드…. 의사 바렐라의 눈과 귀가 된 카메라는 죄수 하나하나의 삶을 비춘다. 그리고 그 안에 계급적 질서, 사랑, 폭력 등 담장 밖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관객이 죄수들에게 친숙함을 느낄 때쯤 영화는 본론으로 들어간다. 1992년 세계적 뉴스가 됐던 '카란디루 폭동'. 죄수들의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된 소동은 결국 특수 경찰의 무차별 진압으로 이어져 111명이 숨진다. 감독은 공권력의 과잉진압이 끔찍한 유혈사태를 불러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사망한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는 자막을 띄운다.

지나치게 밀집된 공간에서 서로 부닥치며 살아가는 죄수들의 모습과 그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는 영화는 2시간25분 동안 이어진다. 원작은 주인공 바렐라가 쓴 '카란디루 스테이션'. 바렐라를 주치의로 둔 감독이 5년 동안 만든 이 작품은 지난해 칸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됐었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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