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대체시설, 한·중·일 갈등 해결에 기여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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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니시하라 하루오 아시아평화공헌센터 이사장(오른쪽)과 쑹청유 베이징대 교수가 14일 서울의 대한적십자사 빌딩에서 동북아시아의 발전 방향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는 최근 훈풍이 불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아시아 중시 외교를 강조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제안했다. 중국도 기본적으론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로 발전하기 위해선 역사 문제, 북한 등 해결 과제가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총장을 지낸 니시하라 하루오(西原春夫) 아시아평화공헌센터 이사장과 중국 베이징대 동북아연구소장을 역임한 쑹청유(宋成有) 베이징대 사학과 교수가 동북아시아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두 사람은 사단법인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이사장 서영훈)이 한·중·일의 청년·학생 70여 명을 초청해 서울에서 13~16일 개최한 ‘동아시아 생명포럼(LOPS)’에 참석했다. 니시하라 이사장은 “내가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에게 야스쿠니(靖國) 신사 대체 시설을 건립하자는 편지를 처음 보내 대체시설 논의가 시작됐다”며 “민주당의 다수와 사민당, 야당인 공명당이 대체시설 건립에 긍정적이어서 하토야마 총리가 결단하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쑹 교수는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핵과 민생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핵무기 보유에 반대한다는 입장은 확고하다. 그러나 대화로 풀려 한다”고 밝혔다. 독일 통일 등 유럽 통합을 오래 연구해온 니시하라 이사장은 “북한에 급격한 변화가 올 경우 한국에 큰 부담이 된다”며 “한국은 이에 대비해 지금부터 주변 국가들과 협의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는 본지 오대영 기자가 맡았다.

-한·중·일 우호를 저해하는 큰 주범은 인터넷에 떠도는 상대방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 정보다. 해소 방안은.

쑹 교수 : “인터넷의 왜곡된 정보 유통은 매우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다. 그러나 네티즌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잘 지도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들도 성숙해지면 자제한다. 그래도 네티즌들은 반드시 상대국의 입장을 잘 이해해야 한다. 언론도 특정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무책임한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니시하라 이사장 : “ 이번 포럼에 참석한 미래 지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상대 국가의 장점을 이야기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오랜 앙숙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잘 지낸다. 한·중·일은 근대에 들어서 사이가 나빠졌었다. 아직도 역사 문제가 우호 증진의 큰 걸림돌인데 해결 방안은.

니시하라 : “일본에 문제가 있다. 독일은 나치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사과와 반성을 해 유럽의 화해가 가능했다. 일본에선 아직도 과거 침략 역사와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 국가에 대한 가해자다. 후배는 선배가 만든 피해자를 가슴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 정부 못지않게 국민이 먼저 해야 한다.”

쑹 : “국민의 행동이 중요하다. 중국인들은 그동안 일본인에 대해 생각하면 우선 야스쿠니 신사, (재임 중 계속 야스쿠니에 참배한) 고이즈미 전 총리, (일제의) 난징(南京) 대학살을 떠올렸다. 그런데 많은 일본인이 지난해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일본이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피해에 대해 가장 많이 지원하자 중국인들이 많은 감동을 받았다.”

-독일과 프랑스는 공통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 한·중·일도 가능하지 않은가.

쑹 : “2005년에 3국이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든 적이 있다. 이런 일들이 늘어나야 한다. 일본 정부는 1982년 역사 교과서를 만들 때는 주변 국가를 고려한다는 ‘근린조항’을 정했다. 일 정부가 이런 입장을 유지한다면 좋아질 것이다.”

니시하라 : “과거에 공동 교과서를 연구할 때 일본의 학자는 중국, 중국의 학자는 일본의 입장에서 역사 문제를 바라보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제는 국가 입장이 아니라 아시아의 입장에서 역사를 봐야 한다.”

-하토야마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 대체시설을 만들 의사가 있다던데.

니시하라 :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처음 불거진 2001년 와세다대 출신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관방장관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야스쿠니는 19세기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 침략하는 제국주의 사상이다. 21세기의 아시아와 세계에 걸맞은 일본을 만들기 위해선 과거 전쟁 때문에 숨진 모든 국가의 국민들을 추도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담은 대체시설을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후쿠다 장관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야스쿠니 대체시설 간담회를 만들었다. 이후 우익 세력 등의 반대가 격렬해 흐지부지됐지만, 지금은 민주당 내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

쑹 : “ 어느 국가든지 국가를 위해 숨진 사람들을 추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다른 국가를 침략한 사람들을 추도한다면 피해자 입장에선 다르다. 대체시설을 만들면 3국 간 갈등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동북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은 북한인 것 같다. 북핵·탈북자 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니시하라 : “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북한은 중국과 협력해 발전해야 한다. 상황이 더욱 나빠진 뒤 붕괴 등 북한에 급격한 변화가 오면 한국에는 큰 부담이 된다. 한국도 북한의 변화에 대비해 다른 국가들과 충분히 협의하면서 대책을 세워놓아야 한다.”

-하토야마 총리는 동아시아공동체 창설을 표방했는데.

쑹 : “중국도 같은 생각이다. 이미 ‘아세안+3’ 등과 같은 노력도 진행 중이다. 공동체는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것에 기초해야 한다. 물론 역사 인식, 집단 안보 문제 등의 숙제도 있지만, 단계적으로 풀어가면 가능하다.”

니시하라 : “21세기에 맞는 목표를 세워 공통 의식을 갖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한 후 협의 기간을 정해 추진해 가면 가능하다. 중국은 미국을 제외한 최강국이 된 만큼 이제 중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생각하면서 행동했으면 한다. ”

사회·정리=오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니시하라 하루오(西原春夫·81)=세계적인 형법학자이자 일본의 아시아평화공헌센터 이사장. 전직 일본 총리 6명이 그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존경받는 원로다. 와세다대 총장을 지낸 후 독일에서 유럽 통합을 연구하면서 동아시아 통합 문제를 구상했다. 일본의 ‘적극적 평화 활동’을 강조한다.

◆쑹청유(宋成有·64)=세계사를 전공한 베이징대 사학과 교수. 베이징대 동북아연구소장을 지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동북아 문제에 깊숙이 반영해 폭넓은 동북아 역사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9월부터 동북아 역사재단의 해외초빙학자 자격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다음달에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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