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한국] 공천제도가 정치발전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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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각 정당이 대통령후보를 뽑기 위한 치열한 예비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미국에선 각 주(州)에서 당원들이 직접선거로 대통령후보를 뽑아 본선에 진출시키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연방 상하원의원.주지사, 여타 선거직도 비슷한 절차로 뽑는다. 한국에선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후보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그런데 공천제도는 미국이 이미 1백년 전에 퇴출시킨 전근대적.비민주적.비생산적인 제도다. 정치입문에서부터 공정한 경쟁을 막고 정치 기득권층을 보호함으로써 정치발전에 치명적 장애가 되는 제도란 이야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도 따지고 보면 공천제도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놓칠까 두려워 '공천제도 폐지' 를 감히 외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국민은 법에 따라 누구나 후보로 나설 수 있고 후보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런 기본권을 정당 당수나 위원회가 공천이란 이름으로 가로채는 것은 국민의 1차적 참정권을 유린하는 행위다.

또 정당의 지명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지구당위원장이 되고 낙선지구도 중앙에서 위원장을 임명하기 때문에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에서의 자유경선은 유명무실해진다.

거기에다 공천제도는 당수가 자기사람들로 정당기능을 장악해 당내독재를 가능케 한다. 그 결과 당내 민주절차가 무시되고 정파이익을 위한 경쟁만 남게 되며 신진 유입을 가로막아 정치권을 노후화시킨다.

기업인들이 대표성 없는 전국구 의원 공천을 돈으로 매수해 정경유착을 조장하고, 학자나 언론인들이 자리를 바라 정치권에 아부함으로써 직업주의를 크게 훼손시키기도 한다. 공평한 경쟁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나 사회 전반에 효율과 평등을 가져다주는 조건이다.

그게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개인간 기회균등이 깨지고 조직내에선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 생산성을 저하시킨다.

정당공천제도의 과감한 폐지를 건의하고 싶다. 이것이 참된 민주주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김휘국 <워싱턴 동서문제연구소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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