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중국의 원조 해외고찰과 21세기형 한·중 인적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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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근대 외교 사절단의 수장은 미국인이었다. 주인공은 앤슨 벌링겜(Anson Burlingame, 1820~1870). 1846년 하바드 법대를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변호사를 하다 1855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은 1861년 그를 주청미국공사(駐淸美國公使)에 임명했다. 그는 포안신(蒲安臣, 중국식 발음 푸안천)이란 중국식 이름으로 불렸다. 당시는 중국에 주재하는 서양 국가의 외교 사절들의 황제 알현은 불가했고, 중국 역시 외교사절을 전혀 파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1867년 임기를 마치면서 공친왕 혁흔(奕訢)을 만난 자리에서 벌링겜은 중국을 대표해 ‘판리각국중외교섭사무대신(辦理各國中外交涉事務大臣)’이란 직함을 얻는다. 그는 중국관리 2명, 영국·프랑스 외교관 두 명, 당시 통역관 양성학원이던 동문관(同文館)출신 7명과 황제의 명을 받은 흠차대신 신분으로 1868년1월5일 베이징을 떠났다. 미국과 유럽을 돌며 각국 수반을 만나 국서를 제정하던 벌링겜은 1870년2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서 병사했다. 나머지 사절단은 1870년11월18일 베이징에 돌아올 때까지 11개 국을 순방해 순회대사로서 각종 교섭과 조약을 체결했다.


▶청말 헌정고찰단이 로마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어 외교적인 목적 대신 헌정 도입을 위해 서양 정치 시찰을 위한 고찰정치대신(考察政治大臣) 5인으로 구성된 고찰단 1진이 1905년 12월 출국했다. 이들은 일본을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해 뉴욕을 거쳐 영국까지 둘러보고 돌아왔다. 중국에 돌아온 뒤 『열국정요(列國政要)』, 『구미정치요의(歐美政治要義)』등의 책을 써 나라 개혁에 보탬을 주고자 했으나 망국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岩倉使節團)을 유럽에 보내 서양 문물을 배워왔다. 조선은 1881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일본에 보내 앞선 선진문물 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모두 뒤쳐진 국가가 앞선 선진국가의 문화와 제도를 흡수하기 위한 해외고찰 프로그램이었다.

근대 초기 해외고찰단의 모습이 그러했다면 중국의 21세기형 해외 고찰단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8박9일동안 한국을 방문한 ‘중국 청소년 대표단 한국문화 고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지난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방한기간동안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격상을 계기로 이뤄진 프로그램이다. 한해에 2회에 걸쳐 400명씩 총 5년간 2000명의 중국 젊은이를 초청하는 대형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번 행사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하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와 한중우호협회가 주관했다. 이번에는 중국의 신장, 랴오닝, 산시, 베이징, 윈난, 구이저우에서 학생과 인솔자 포함 200명이 참가했다. 중국인민대회우호협회의 엄격한 선발을 거쳐 변경 학생 위주로 선발된 대표단은 전 일정 내내 자신의 고장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요소들을 한국에서 배우려는 열의로 가득차 있었다.
한중관계 강연자리나 카이스트 방문 과정 등 질의 응답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들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궁금증을 해소해 나갔다. 서울→용인→대전→광양→통영→부산→제주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함께한 한국 대학생 서포터즈 중 막내는 이런 중국학생들의 태도를 보면서 책상머리 교육에만 치중하는 한국식 교육 현실을 ‘갈택이어(竭澤而漁)’로 표현했다. 즉,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듯이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영어나 암기식 교육에만 치중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
전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차이나 타운이 제대로 발붙이지 못한 나라가 한국이다. 중국의 지속적 발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8박9일동안 베이징 폭설과 추위·폭우, 빡빡한 일정, 각종 돌발사건들 속에서 중국 청년 200명을 안내하면서 중국의 발전이 꽤 오랫동안 멈추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바로 자신보다 앞선 나라의 장점은 배워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 단점은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청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행함으로서 중국의 지속적 발전 동력을 찾으려는 중국 지도부의 존재도 또 다른 이유다.
지난 8박9일동안 중국 대학생 200명과 한국 대학생 12명이 함께 전국을 누볐다. 내년부터 중국은 한국 대학생 100명을 초대할 예정이다. 이 교류 프로그램은 자국의 학생을 선발에 상대국에 보내 일방적인 고찰활동을 펼쳐왔다. 이보다 앞으로는 한중 청년들을 반반씩 섞어 서로 어울리며 조국과 이웃나라를 함께 누비는 식으로 개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21세기형 한중 인적교류는 이 청년들처럼 서로 부대끼며 유대의 끈을 이어가는 식으로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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