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책방 이어온 여사장 '인터넷선 책 고르는 맛 못 느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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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호 20면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의 고서점 거리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진보초 헌책 축제가 열리면서 주변 골목이 헌책을 사고팔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책방 곳곳에는 ‘숨어 있는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0년째 진보초 '헌책 축제'

축제 기간 중에는 야외 책 판매가 실시됐다. 일부 골목은 300m 이상 길게 늘어선 헌책 판매 수레로 장관을 이뤘다. 골목에 자리 잡은 300여 개의 고서점은 문고본과 사전류 외에 희귀 도감과 미술책을 대거 내놓았다. 도쿄에 거주하는 이토 아오키(80)는 “축제가 처음 열린 해부터 50년째 찾고 있다”며 바퀴가 달린 대형 가방에 가득 책을 실었다.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500㎞가량 떨어진 오카야마(岡山)시에서 온 30대 여성도 “소장하고 싶었던 메이지(明治) 시대 풍속도를 발견했다. 역시 진보초에는 언제나 보물들이 넘친다”고 말했다.

해마다 일본의 책 애호가들을 흥분시키는 이 헌책 축제의 공식 명칭은 ‘도쿄 명물, 간다후루혼(神田古本) 축제’다. 볼거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고서 100만 권을 내놓고 정가의 20~30%에 판매하는 ‘마른 하늘 보물찾기 시장’과 함께 희귀본을 내놓는 ‘특선 고서(古書) 즉석 판매전’ 이 열려 주목을 끌었다. 국민적 축제가 되면서 유명 화가가 나서 행사 포스터를 직접 그렸다. 탤런트 등 유명인의 애독서나 권장도서를 전시하는 이벤트 행사도 발길을 끌었다.

일주일간 열리는 축제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1일 열린 진보초 북 페스티벌에서는 책 수레 150대에 약 3만 권의 신간 서적을 전시했다. 사실상 새 책이지만 얼룩이 지거나 손때가 약간 묻었다는 이유로 정가의 반값이면 살 수 있다. 유명 작가들의 사인회와 강연회, 재즈 연주회 등도 열렸다. 책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축제 기간 중 몰려든 인파는 50만 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을 비롯해 외국에서 달려온 ‘열성 팬’들도 있다.

이곳에서 4대(代)를 이어 오며 100년간 고서점을 운영해 온 다무라(田村) 서점의 50대 여사장은 “인터넷을 통해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지만 직접 실물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맛은 인터넷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축제는 올해 63회인 독서주간과 맞물려 열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독서주간이 따로 없을 만큼 독서열이 뜨겁다. 해마다 열리는 헌책 축제는 독서에 대해 느슨해진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계기일 뿐이다.

일본 국회는 2010년을 아예 ‘국민 독서의 해’로 정했다. 젊은 층의 활자 매체 이탈이 일본의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 따라 1년 내내 독서 진흥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이런 바람을 타고 진보초는 내년에 연중 할인 판매는 물론이고 워크숍·강연회·사인회·독서회 같은 다양한 헌책 축제를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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