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몇 단계만 거치면 서로 만나는 음악, 천문학, 미술, 역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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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젠하임 가는 길
정준호 지음,

삼우반
452쪽, 2만5000원

‘평균 여섯 단계를 거치면 어떤 사람과도 연결된다.’ 미국 콜럼비아 대학의 던컨 와츠 교수의 실험으로 2003년 흥미로운 이론이 탄생했다.

긴밀히 연결된 세계를 분석해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이론에서 ‘사람’을 ‘음악’으로 바꾼다면?

중세 시대의 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는 1515년 ‘이젠하임 제단화’를 완성했다. 프랑스 동부 마을인 이젠하임의 성당에 그려진 이 그림은 십자가 위 예수의 인간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이후, 유대 음악가에 대한 나치의 핍박에 맞선 작곡가 힌데미트는 그뤼네발트를 주인공으로 오페라를 만든다. 그런데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페라를 먼저 만들어 힌데미트에게 영향을 준 ‘선배’는 같은 20세기 독일의 작곡가 한스 피츠너였다. 피츠너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다성 음악을 지켜냈던 팔레스트리나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오페라 ‘팔레스트리나’를 작곡했다. 이처럼 400여 년에 걸친 예술가가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네트워크는 계속된다. 힌데미트는 중세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이론을 연구한다. 오페라 ‘우주의 조화’(1957)는 우주의 법칙을 밝히려 애쓴 케플러의 삶을 다뤘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태양계에 주목한 작곡가가 구스타프 홀스트다. 그는 별의 이름을 붙인 관현악 모음곡 ‘행성’(1916)으로 우주의 조화를 그려냈다. 모음곡이라는 장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행성’은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와 닿아있기도 하다. 몇 단계를 거치면 천문학과 음악, 중세와 현대가 만난다.

이처럼 혼자 생겨난 음악은 없다. 역사적으로 음악 작품은 그림은 물론 천문학과 춤, 문학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뮤직(Music)’의 어원인 ‘뮤즈(Muses)’가 서사시, 역사, 희극, 춤 등을 관장하는 그리스의 아홉 신을 아우르는 말인 것과 통한다.

저자는 “음악은 다른 것과 힘을 합칠 때 더욱 아름답다. 이 책은 춤과 시, 역사 등이 음악의 본질임을 알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음악이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믿으며 다른 예술을 지배하려고 할 때 청중의 외면이 따른다는 것은 이 책의 경고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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