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상식을 벗어난 국책연구기관의 노사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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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번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이 공개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연구기관의 단체협약 분석 결과를 보고 연구기관 노조의 조합활동과 근로조건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연구기관에서 노조 임원의 인사는 노조와 합의해야 하고, 노조 간부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노조의 동의 없이는 아예 징계할 수 없도록 해 놓았다. 나아가 직원 채용의 대상·시기·방법 등을 노조와 협의해야 하며 규정·평가·인사를 다루는 위원회는 아예 노사가 동수로 구성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조합대표가 요청하거나 연구원 측과 단순 협의만 하더라도 근무시간 중에 조합활동을 자유롭게 하도록 해서 사실상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제약받고 있는 기관도 있다. 법적인 연차휴가 일수 25일을 무시하고 근속기간에 따라 법적 일수 이상의 연차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아무리 단체협약이 법보다 우선한다고 해도 이 정도면 상식 수준을 한참이나 넘어선 행태다.

실상이 이러하니 최근 몇몇 소신 있는 연구기관장이 문제 있는 단체협약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양심과 국민정서상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고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 것은 이해하고도 남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소신 있는 행동을 한 기관장이 거꾸로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한 장본인이라며 안팎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연구기관의 노사관계가 안정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운영자금이 어디서 나오는가. 국민의 혈세가 아닌가. 국민 세금으로 연구에 몰두해야 할 연구기관이 제대로 일하자는 노력 대신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담합에 가까운 협약을 통해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데 골몰하고 있는 모습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국책연구기관의 설립과 운영이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지게 한 이유는 정책 결정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정책 기조와 아이디어의 생산에 공공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박사 인력의 상당수가 열악한 환경하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드러난 노사협약은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다. 이제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방만한 국책연구기관의 행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만 천명할 뿐 문제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대책에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를 계기로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선 정부는 문제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이를 계속 방치해온 연구기관에 대해 정식으로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이들 연구기관에 대한 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총리실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관리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연구기관의 내부 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수립하고 이들 기관이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 개혁을 일관성 있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연구기관에 지원되는 국민 세금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때다.

윤창현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