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명가(名家)를 가다]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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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겠다며 축구명가 재건에 나선 천안초 축구부 선수들. 이들은 재창단 5년 만에 전국무대에서 다크호스로 평가 받으며 우승컵을 들어올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조영회 기자]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전남 여수 일원에서 열린 제38회 전국소년체전에서 충남이 3위에 오르면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충남은 전국체전에서도 10년이 넘도록 상위권을 유지할 만큼 스포츠에 강하다. 이 같은 충남의 선전 배경에는 천안·아산의 역할이 컸다. 천안·아산은 소년체전을 비롯해 전국체전 등의 대회에서 수영·육상·체조 등 전통적 강세종목을 비롯해 핸드볼·하키 등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 충남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 스포츠 스타의 산실인 천안·아산지역 초·중·고 운동부를 찾아 그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들어봤다.

정근영 감독 ‘자율축구’ 뿌리 내려
재능있는 선수·학부모 끝까지 설득

#1. 지난달 28일 오후 청양 정산고등학교 운동장. 충남도민체전 남자초등부 축구경기 결승전이 열렸다. 천안을 대표하는 천안초와 당진군 대표인 당진초가 맞붙었다. 비록 열 두세 살의 어린 나이의 선수들이었지만 두 팀 모두 고향의 명예를 걸고 전·후반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100여 명이 넘는 응원단의 함성 때문에 선수간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선수들은 눈빛으로 소통하며 패스를 주고 받았다. 드디어 경기가 끝나고 승리의 여신은 천안초의 편이었다. 경기결과는 천안초의 2대 1 승리. 올 봄 소년체전 평가전 우승에 이어 충남지역 대회 연속 우승이었다. 부모는 물론 천안지역 축구 관계자, 학교·교육청 관계자들은 얼싸 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선수들의 목에 일일이 금메달을 걸어주며 격려도 해줬다.

#2. 9일 오후 3시 천안시 성황동 천안초 운동장. 맨땅 운동장에서 축구선수들이 볼 트래핑을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3~5학년 학생들로 수업을 마치고 훈련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정문 반대편 골대 뒤, 천안초 본동 왼편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2003년 3월 26일 불의의 화재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소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선수들은 먼저 간 선배들의 숭고한 축구사랑과 학교사랑을 기리며 매일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고 한다. 지도자들과 학부모들 역시 ‘천안의 축구 명문’이라는 전통을 계승하고 천안을 대표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들을 다독인다고 한다.

지난달 청양에서 열린 충남도민체전에서 우승한 천안초 축구부. 정근영 감독(뒷줄 오른쪽 둘째)과 선수들이 우승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고 있다. [천안교육청 제공]

2003년 3월 26일 화재가 발생해 9명의 꽃다운 소년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사고 직후 축구부는 해체됐고 ‘제2의 홍명보’ ‘제2의 박지성’을 꿈꾸던 축구 꿈나무들은 아픈 상처만을 간직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40여 년을 넘게 천안 축구를 대표하던 천안초 축구부가 사라진 것이다. 이 때만 해도 천안초 운동장에서 축구공이 뒹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천안초 출신의 축구인들은 물론이고 교육계와 축구협회 모두 “다시는 천안초에서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선수들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고 1년 뒤인 2004년 천안초 운동장에 축구공이 다시 등장했다. 선수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지도자도 나섰다. 사고의 아픔은 크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이 여전하고 천안을 대표하는 축구부의 명맥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여론도 한 몫을 했다. 축구부 재건은 2005년 3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학교 출신인 정근영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다. 천안초-천안중-천안농고(현 천안제일고) 축구부를 거친 정 감독은 “모교 축구부를 맡아 달라”는 선배, 학부모, 축구인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흔쾌히 허락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뛰던 운동장에서 후배들을 가르쳐 국가대표, 프로선수로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먼저 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영광의 우승컵을 안겨줘야겠다는 의무감·책임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 감독이 부임할 당시 축구부원은 7명. 대회출전은 고사하고 훈련도 어려웠다. 선수도 없는데 언감생심 코치는 엄두도 못 냈다. 선수들을 찾으러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천안시청, 천안교육청, 천안축구협회 등 관계기관을 찾아가 ‘명가재건’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재능이 있는 학생들의 부모를 설득해 축구부원으로 만들었다. 이런 노력 끝에 2006년 비로소 대회출전이 가능해졌다.

첫 성과는 2007년 거뒀다. 경주에서 열린 화랑기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비록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했지만 선수단 구성을 한 지 1년 만에 거둔 성과로는 우승컵 못지 않았다. 2008년에도 화랑기대회 3위에 오르며 실력을 유지했다. 올 2월엔 26개 팀이 참가한 비공식 대회 안동 웅부배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전국대회 우승 문턱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다. 감독과 코치, 학부모,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뛴 결과였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올해 5월 전남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 충남대표로 출전하는 영광을 얻었다. 비록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충남의 대표선수로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난달 열린 충남도민체전에선 천안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며 금의환향했다. 요즘 축구인들 사이에선 “천안초 축구부가 이제야 제 모습을 찾았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회에 출전하면 ‘경계대상 1호’에 오르기도 한다. 대진표에서 천안초와 만나는 다른 학교 지도자들은 “이번엔 쉽지 않겠다”며 정 감독에게 엄살을 늘어놓는다고 한다. 서서히 과거의 명성의 되찾아가는 중인 것이다.

정 감독의 지도방식은 ‘자율축구’다. 사실 정 감독이 초등학교 시절엔 구타와 얼차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곧바로 운동장에서 퇴출된다. 재능이 있는 선수는 학부모를 설득해서라도 데려오거나 잔류시키고 재능이 없다면 과감히 축구를 그만두게 한다. 진로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부모가 원하면 다른 시·도의 중학교로 진학을 양해해준다. 천안에는 천안중 축구부가 있지만 학부모들의 의견을 존중해 진로를 결정한다. 대신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냉정하게 평가를 해준다.

사실 정 감독의 심적 부담이 적지 않다. 모교라서 애착이 더 가지만 축구부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1~2년 내에 전국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려야 한다는 것도 그를 고민하게 만든다. 정 감독은 “좋은 선수들만 뽑을 수 있다면 사실 우승이라는 것도 그리 어려운 것 만은 아니다”며 “동계훈련을 충실히 하고 선수, 학부모와 하나가 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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