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설비 없이 지하철 석면 해체작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천장이 석면해체 공사를 앞두고 뜯겨져 있다. 역사 한쪽에 석면 가루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한 분리 칸막이가 마련돼 있다. 칸막이엔 ‘석면 관련 공사로 계단을 폐쇄한다’고 적혀 있지만 이날 출근 시간대에 이 칸막이의 문은 수시로 여닫힌 것으로 나타났다. [최승식 기자]


지하철 역사의 석면 해체 공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공사 관리를 느슨히 해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의혹이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11일 서울지하철 1~4호선의 일부 역사에서 진행 중인 ‘환경개선 공사’ 과정에서 석면 철거업체가 안전설비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작업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서울메트로 본사 직원과 노조 관계자, 해당 공사업체 직원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2007년 이후 ‘석면관리팀’을 만들어 노후 역사의 석면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천장재 등에서 기준치 이상의 석면이 검출된 낙성대·서초·상왕십리역 등 9개 역사가 대상이다. 이 중 방배역은 지난해 말 공사가 끝났고, 서초·봉천역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나머지 역사들은 공사 시행 준비 단계에 있다.

석면 해체 작업에서 발암 물질이 퍼지지 않게 하려면 ▶공사 현장의 공기를 빨아들여 한 곳으로 모으거나 ▶천장·벽·바닥을 완전히 밀폐해야 하는 등 관리 규정이 까다롭다. 이 때문에 이번 해체 공사를 맡게 된 5개 업체들이 서울메트로 공사 감독관에게 금품을 전달하고 “안전 규정을 좀 어기더라도 눈감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방배서 지능팀 이치우 경사는 “관련 규정을 다 지키며 공사를 실시하다 보면 한 역사당 공사 기간이 6개월을 넘길 정도로 길어진다”며 “이 때문에 업체들이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손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미 제3자 명의의 통장에 억대의 금품이 입금된 정황을 포착하고 본사 직원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하철 역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석면 공사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석면 가루가 고스란히 역사 내에 떠돌아다닐 수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역사를 이용하는 승객이 이 먼지를 고스란히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2호선 서초·봉천역은 매일 3만~4만여 명의 승객이 이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결과 냉방 공사 과정에서도 석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일부 역사에선 승객이 오가는 시간에 밀폐 칸막이가 수시로 여닫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 2호선 낙성대역에서도 출근 시간대에 냉방 공사를 위해 세워놓은 칸막이 문을 공사 인부들이 들락날락했다는 목격자가 많았다.

서울메트로 측은 “금품 비리에 대해선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승객들이 석면 가루에 노출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석면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역사는 서초·봉천역 등 두 군데인데, 해당 역은 ‘완전밀폐형 가설 칸막이’를 세워 석면 가루가 바깥에 날리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메트로 홍보실 김정환 차장은 “석면 공사를 하는 역사는 매일 석면 농도를 측정해 발표하고 있다. 더욱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임미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석면(石綿)=돌솜이라고도 하는 광물. 건축자재·방화재·전기절연재 등으로 쓰였으나 발암 성분으로 알려지며 1992년 이후 건축자재 사용이 금지됐다. 석면 가루는 폐질환 및 중피종(늑막·복막 등에 생기는 종양)을 일으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