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문화재정책 개발신청에 '보존' 허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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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시의 문화재 보호 정책이 뒤뚱거리고 있다.

역사.문화적 정취가 배어 있는 건축물과 사적지 등에 대한 사전조사나 보호대책을 소홀히 하다 소유주들이 잇따라 개발에 나서자 뒤늦게 현장조사를 벌이는 등 우왕좌왕 하고 있는 것이다.

◇ 문화재 지정 논란〓1970년대 요정 정치의 산실로 불렸던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이 대표적 케이스. 건물 7동.연면적 1천3백30평 규모의 삼청각은 1970년대에 첫 남북회담이 열렸고, 여야 정치인의 회담장소로 애용됐던 곳이다.

문제는 H건설측이 최근 옛 삼청각인 한정식집 '예향' (대지 3천여평)을 헐고 단독주택 18개동을 짓겠다며 토지형질변경 허가 및 건축허가 신청을 내면서 불거졌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서울시는 삼청각 보존 여론이 비등해지자 오는 25일자로 '삼청각 문화재 지정 심의' 고시를 하고 30일간 일체의 건축행위를 금지, 문화재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H건설측은 "지금까지 요정이나 술집이 문화재로 지정된 전례가 없다" 며 재산권 행사를 위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 서울시 문화재 보호 조례에는 문화재로 지정되면 소유주에게 시세(市稅)인 토지계획세와 구세(區稅)인 재산세.종합토지세를 면해 주도록 되어 있을 뿐이어서 건물주들이 문화재 지정을 기피하는 실정이다.

◇ 주먹구구식 관리〓서울시는 사전 조사는 않고 민원이 발생하거나 소유주가 지정을 요구할 경우에만 조사에 나서고 있다.

이런 까닭에 국내영화의 대표적 개봉관에 속했던 중구 을지로 국도극장이 지난해 10월 소리소문도 없이 헐렸다.

1913년 '황금관' 으로 개관돼, 48년 개명된 국도극장이 철거돼 오피스텔 부지로 전용됐는데도 서울시는 실상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다는 지적이다.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백제초기 왕성 추정)도 마찬가지.

수년전에 이미 4㎞에 이르는 성벽 중 1.9㎞가 잘려나갔고, 현재 토성안 아파트부지에선 문화재가 발굴되고 있지만 서울시는 사유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명동의 옛 국립극장과 미문화원.승동교회 등도 보존대책이 불확실하다.

한편 서울시는 1969년 중구 장충동 소재 '장충단비' 를 유형문화재 1호로 지정한 이래 지난해 말까지 모두 1백85곳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 대책〓환경정의시민연대 곽현 부장은 "문화재 지정에 따른 재산권 보호를 위해 시와 국가가 부지를 공동매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서울시 조교환 문화재과장은 "연내에 옛 가옥.건물 등에 대한 종합조사를 실시해 보전가치를 평가할 방침" 이라며 "문화재 지정에 따른 인센티브 확대 방안을 검토 중" 이라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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