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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칼럼] '3김정치' 퇴출할 기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어제 불던 바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바람이 지금 우리 사회에 불고 있다.

시민단체가 일으킨 이 바람이 지금 부는 방향은 대체로 한쪽을 향하고 있다.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이들의 낙선운동을 벌인다는 쪽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소극적 낙선운동에 불만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확고한 신념 위에서 낡은 정치를 씻어갈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믿는다.

시민의 참정권과 선거혁명을 유도할 중대한 물굽이를 잡았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들은 바람의 성과에 만족할 지 모른다.

그러나 왜 많은 사람들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이처럼 열과 성의를 보이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새롭게 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적 관심과 열망은 단순히 부적격자 명단을 공개하고 인민재판식으로 그들을 낙선시키는 일에만 있지 않다고 본다.

4.19 이후 왜곡된 정치풍토를 이 참에 바로잡아 보자는 시민혁명적 욕구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무엇이 왜곡된 정치풍토인가.

1인 지배의 사당(私黨)정치, 가신(家臣)중심의 패거리 정치, 공천을 이용한 비자금 정치가 지역분할구도와 맞물린 게 그것이다.

이런 3金시대 정치의 대표적 해악(害惡)으로 지금껏 그 잔해가 남아 있음은 숱한 사람들이 지적해온 바다.

한때는 민주화투쟁을 위해 기여한 정치 기제(機制)였지만 이젠 이 해악의 청산 없이는 정치의 민주화는 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선운동과 그 지지 열기에는 20여년의 박정희(朴正熙)군사통치와 이에 항거한 양金씨의 정당정치 운영방식을 이젠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분노의 함성이 잠재돼 있다고 나는 믿는다.

3金시대의 정치에 이젠 종지부를 찍자는 소리없는 함성이 시민운동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다고 나는 확신한다.

다시한번 말하건대 지난 낡은 시대의 정치적 유산을 이번엔 청산하자는 강렬한 욕구가 잠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

1인 중심의 사당정치나, 가신중심의 패거리 정치는 당명과 몇몇 얼굴을 바꾸었다고 청산되는 게 아니다.

3金시대의 낡은 정치구조는 그대로 둔 채 몇몇 부자격자를 낙선시켰다고 해서 정치혁명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난 총선에서도 젊은 후보자들이 대거 출마해 '새 피' 정치를 역설했지만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구태에 물든 새 피들이 '헌 피' 못지 않게 반민주적 작태를 보인 사례가 허다하지 않은가.

따라서 나는 이번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몇몇 비리 부패 정치인들의 낙선에 열중하기보다는 3金시대 정치의 낡은 정치구도를 청산하는 시민들의 본격적인 정치혁명으로 고양되기를 촉구하는 쪽이다.

이를 위해 낙천.낙선운동의 대상자를 명백한 비리와 부패정치는 물론이고 사당정치와 패거리정치에 현저히 기여한 정치인들도 여기에 포함시켜 차제에 낡고 썩은 정치의 구도에 철퇴를 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총선에서 보다 더 중요한 시민단체의 기능은 적극적 선거감시라고 본다.

사당정치.패거리정치가 지난선거때 연고지에서 벌일 작태가 이번 선거에도 판을 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기능이 낙선운동 못지 않게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5백여 시민단체가 모였다고 하지만 선거구 전역에서 철저한 감시와 고발기능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낙선운동 바람이 불면서 인터넷 사이트엔 젊은이들이 몰려 들고 있다.

하지만 사이버세계에서 흥분하고 지지한다고 무슨 개혁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선거현장에 나와 직접 투표하고 감시와 고발기능을 맡는 선거혁명의 첨병이 되기를 당부하고 싶다.

몇몇 대학 학생회가 총선연대에 적극 동참하기로 한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3金 이후의 정치는 젊은이들 스스로 참여해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정치세계다.

4.19나 6월 항쟁의 대열에 나서듯 이번 선거혁명 대열에 나서서 낡은 정치를 부수고 새 정치의 틀을 만드는 직접참여정치의 새로운 모범을 차제에 보이기를 바란다.

권영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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