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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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30) 만만찮은 저항

김성진(金聖鎭.69.전 과기처장관)국방과학연구소(ADD)부소장은 나에게 '무슨 얘기든 좋으니 어서 말하라' 는 표정을 지었다.

6개월전 국산 벌컨포의 문제점을 해결하라며 내게 ADD 탄약개발부장을 맏긴 후 한번도 공식 보고를 받지 못했던지라 당연히 궁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고했다.

"부소장님, 국산 벌컨포에 번번히 사고가 생기는 것은 국산 벌컨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벌컨탄의 뇌관(雷管)과 추진제(推進劑)재료가 불량품입니다. 그 책임은 불량품 재료를 제공한 미국의 오린사(社)가 져야 합니다. "

金부소장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마침내 사고 원인을 밝혀냈구나' 하고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더우기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벌컨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의 기술과 장비.재료 등을 들여와 만든 국산 벌컨탄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격려했다.

"나는 말이야. 자네가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어. 내가 왜 이 일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배제시키고 자네를 책임자로 임명한 줄 알아□ 설사 그들이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해도 남들이 믿어주지 않을 걸세. "

金부소장은 곧바로 나를 ADD 선임 부소장인 현경호(작고)박사에게 데리고 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어 심문택(沈汶澤.98년 작고)소장 방에 들렀다.

沈소장은 보고를 다 듣고나서 매우 만족스러운듯 껄껄 웃으며 말했다.

"韓박사, 어려운 물리화학 문제를 잘도 풀었구먼. 즉각 주한 미 군사고문단에 이 사실을 알려주게. 우리가 미국측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아내야지. 그런데 비밀을 잘 지켜야 하네. 이 사실이 새어 나가면 미국의 오린社가 어떤 통로로 압력을 가해 올지 모른다네. "

나는 다음날 ADD에 파견대장으로 나와 있는 주한 미 군사고문단의 지안콜라 중령과 매클로이 상사를 찾아갔다.

이들 역시 국산 벌컨포가 발사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뭔지 조사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미국의 탄약공급회사인 오린사(社)가 관계된 일이어서 더욱 그랬다.

이들은 나의 갑작스런 방문에 다소 놀라면서도 긴장했다.

나는 이들에게 "풍산금속에 같이 한번 가 보자" 고 제안했다.

당시 풍산금속은 경북 포항 근처에 있었다.

내가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직감적으로 '벌컨포 문제 때문이구나' 하는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 셋은 미군에서 제공한 승용차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1977년 12월 말이어서 날씨는 매우 쌀쌀했다.

풍산금속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쯤. 도착 즉시 우리는 공장장 방으로 갔다.

방에는 우리 세 사람 외에 풍산금속의 공장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나는 가방에서 국산 벌컨포의 문제점에 대해 6개월간 조사한 연구보고서를 꺼냈다.

그리고 차근차근 국산 벌컨포가 발사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마침내 '미국 오린사(社)가 제공한 국산 벌컨탄의 뇌관과 추진제 재료가 불량하기 때문' 이라고 결론짓자 순간 세 사람의 표정이 거의 동시에 일그러졌다.

만약 국산 벌컨탄에 문제가 있다면 풍산금속이 우리 국방부에 40억원의 손해배상을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풍산금속은 파산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공장장은 바로 이 점이 두려웠던 것이다.

내 설명이 끝나자 세 사람은 나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벌컨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대우정밀과 통일산업이 원시적 기술로 만든 벌컨포의 성능이 형편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항의가 얼마나 거센지 나도 모르게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글=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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