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개폐 논란] 국가기관도 … 시민도 … 갈라진 국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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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제안하면서 국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 등 국가 헌법기관들을 비롯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로 인해 보안법에 대해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국민은 어느 주장이 합리적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국회 등 정치권은 여야로 갈라져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를 놓고 격렬히 대립하는 등 보혁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는 정부의 입장"이라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정부 각 부처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 측은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 문제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무부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 대통령과 같은 입장일 수 있지만, 다른 입장에 서서 다른 내용을 건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비판론이 나왔다. 한 공안부 검사는 "보안법을 왜 없애야 하는지, 국가의 안보가 무엇인지 등을 놓고 보안법 폐지론자들과 공개토론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판결과 결정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상황이 나타났다고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한 판사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에 대해 대통령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사법부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으로 사법기관의 권위가 손상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던 보안법을 폐지하는 데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환영했다. 반면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은 "반국가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한 인권을 주장하며 보안법을 없애자는 것은 모순"이라며 반박했다.

◆ 찬반 논란에 휩싸인 시민단체와 네티즌들=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 측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시의 적절한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당장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권운동사랑방.천주교인권위원회등 17개 시민단체도 "보안법은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던 '독재정권 안보법'이자 '반인권적 악법'"이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향군인회 등 보수 단체들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라며 "노 대통령의 발언은 보안법을 없애라는 북한 측의 주장에 맞장구 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연대 측도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법에 문제가 있다면 일부 조항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아이디가 'guraud67'인 네티즌은 "북한 공산주의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김정일 만세'를 외친다고 동조할 사람이 있겠느냐.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대화명 '학생'은 "양심의 자유는 국가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며 보안법 개정을 요구했다.

전진배.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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