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등급제 논란 뜨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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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교 등급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현 중학교 3학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2008학년부터 수능의 비중을 크게 낮추는 대신 내신 위주로 선발한다는 골자의 대입 제도 개선 방안이 지난달 26일 발표된 직후부터다. 일부 대학은 '고교등급제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은근히 시행을 암시한다. 고려대 어윤대 총장도 최근 "고교 간 격차가 엄연한 현실인 만큼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불가'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서울지역 15개 대학 입학처장들을 불러 이같은 방침을 전달했다.

◆현실은 어떤가=대학들은 현재 이 문제에 대해 한결같이 '부인'으로 일관한다. 고려대 입학처는 지난달 31일 '고교등급제 보도에 관한 입장'이란 제목의 해명서를 내고 "대학 차원에서 고교 간 학력차이를 추출할 수 있는 자료 입수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 고교등급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선 고교.학원가에서는 "일부 대학이 고교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수시모집 결과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 J학원이 최근 분석한 수강생들의 2005학년도 서울 Y대 수시 1학기 모집 지원 결과만 해도 그렇다.

학생부 성적만 비교하는 1차 전형에서 공학계열의 경우 서울 강북의 J고(내신 백분율 4.96%) 학생은 탈락하고 이보다 성적이 훨씬 안 좋은 강남의 H고(12%)학생은 합격했다. Y대 의학과의 경우 지방 O고에서 석차 백분율이 1.26%인 학생은 떨어졌지만 P외고에서 22%인 학생은 붙었다.

J학원 관계자는 "학생부만으로 우열을 가리는 1차 전형에서 상위 성적을 얻은 학생이 탈락한 것은 고교 등급제를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입학처장을 지낸 서울지역 한 대학의 교수도 "일부 대학이 입학생의 고교별 숫자나 모의고사.수능성적 결과 등에 대한 통계분석을 통해 고교를 평가해 가중치를 달리하거나 가점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학 입장은=대학들은 고교 내신의 최대 문제점으로 '학교 간 학력 격차'가 반영되지 않는 점을 꼽는다. 따라서 내신 반영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학교 간 학력차를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앙대 이용구 입학처장은 "대학들로서는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좀더 신뢰성 있는 학교 출신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의 경우 고교별 등급을 매기지는 않지만 고교별 교육과정 등을 감안해 성적을 다르게 평가한다. 예컨대 특정 과목 1수준(Level 1)에서 A를 받은 학생보다 이 과목 2수준에서 B를 받은 다른 학교 학생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미국 대학은 수십년 동안 고교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축적된 평가자료가 있어 이런 방식이 일반화돼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선 적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입 연좌제'논란=출신 고교가 어디냐가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또 다른 '연좌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육부 한석수 학사지원과장은 "선배들의 업적으로 후배들의 진학 기회가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대 부속고의 한 교사는 "고교 등급제는 학생이 노력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시행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교등급제' 논란을 전문화.특성화된 전형요소를 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한국교육학술정보원 황대준 원장 등)도 나온다.

김남중.이승녕.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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