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고민의 양을 줄여라" 윤석금의 멘토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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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여, 고민하는 양을 줄여라" "좋아하는 일에서 작은 성취를 맛보라"

"적극적인 자세가 나의 경쟁력입니다. 역사상 무언가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소극적이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할 수 있죠. 적극적인 사람은 그 얼굴이나 행동에서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힘이 느껴지죠."

직원 7명과 어린이 책 출판사를 차려 29년 만에 재계 34위(자산 기준)의 대기업으로 키운 윤석금(64) 웅진그룹 회장은 자신의 성공 비결로 적극적인 성격을 꼽았다. 백과사전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뎌 기적 같은 2세대 창업신화를 쓴 윤 회장을 만나 젊은 세대를 위한 멘토링을 청했다.

-윤 회장님은 멘토가 누구입니까?

"과학기술부 장관 겸 부총리를 지낸 오명 건국대 총장,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CEO컨설팅그룹 회장),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 세 분입니다. 오 전 부총리는 역대 장관 중 일을 가장 잘하신 분입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분으로 우리나라 전화의 기초를 닦았고, 아주대 총장으로 있을 땐 어려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죠. 강석진 회장은 GE를 본받고 벤치마킹하고 싶어 모셨습니다. 조동성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영학자죠. 세 분을 매달 만나 회사 일을 상의하고 멘토링도 받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멘토링을 받았습니까?

"일례로 내가 어느 교육기관을 인수할 생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쪽에서 요청도 하고, 마침 모 건설사를 인수하려고 웅진코웨이 주식을 팔아 마련해 둔 자금도 있었죠. 그런데 조동성 교수가 절대 반대였습니다. 오 부총리는 찬성보다 중립에 가까운 입장이었죠. 강 회장은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수할 뜻이 40% 정도 있었지만, 접었습니다."

-CEO에게 멘토가 필요한 이유는 무었입니까?

"누구에게나 인생의 스승은 필요합니다. 특히 CEO는 자기 혼자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쉽습니다. 가령 계열사 사장들 모아놓고 물어보면 내 눈치를 봅니다. 내가 어떤 일에 적극적인데 그 일을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부자는 객관적이기 어렵죠. CEO를 오래 하면 으레 권위적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내부자들이 입을 닫고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조직 전체가 이런 분위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그래서 CEO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콘트롤해 줄 멘토가 필요합니다. 멘토의 도움을 받아 고칠 건 고치고 변화할 건 변화하는 거죠. 의사결정권자가 오류를 범하는 것은 이런 간섭을 받지 않아서입니다. 앞으로는 나이가 들어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분들 말고 젊은 사람을 스승으로 모셔볼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윤 회장은 이 이야기 끝에 재벌 2세도 학자나 언론인 출신에게서 멘토링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계엔 이런 멘토가 더러 있다. 소액주주운동의 선구자인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학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장 학장을 만났을 때 그는 "오너 3,4세와 만나 쓴 소리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다음에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한다고 그는 전했다. 이런 자리를 장 학장은 '열린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CEO는 회사 안팎에 열린 공간을 마련해 나와 다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어깨가 처져 있습니다. 취업도 잘 안되고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기 일쑤죠. 기성세대에 속한 이 시대의 멘토로서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습니까?

"우선 고민의 양을 줄여야 합니다. 5년, 10년 지나고 나면 고민거리도 아닌 일로 괜한 고민을 했구나 할 때가 있어요. 불필요한 고민은 힘만 빼고 공연히 좌절하게 만듭니다. 더 큰 세계를 보려고 노력하고, 여행도 하고, 멘토링도 받으면서 쓸데없는 고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둘째로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중에 그만두지 않죠. 포기하지 않고, 무엇이든 끊임없이 도전해 무언가 이뤄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 보면 날씨처럼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까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가령 여름날에 너무 덥다고 불평하는데, 그러기보다 '더워서 땀이 많이 나니 노폐물이 빠져나와 몸에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나는 능력이 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기 암시를 하고 부닥쳐 보세요. 그렇다고 안 될 일까지 무조건 된다고 믿고 밀어붙이라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노동시장에 채 진입조자 못한 청년실업자들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하시고 싶나요?

"우선 사회적 차원에서는 서비스업을 활성화해 서비스직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청년실업자 당사자라면 나는 취업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되고,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되는 법입니다. 결국 정신적인 좌절감을 극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기회는 누구에게나 닥칩니다. 그 기회를 누구나 노력하면 잡을 수 있어요. 단적으로 공부 잘하는 사람만 기회가 닥치는 거 아닙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지금 20대의 95%가 월 88만원의 급여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선택 받은 상위 5% 말고는 비정규직의 삶을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령 사람은 누구나 생기가 넘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눈동자가 살아 있고, 행동도 살아 있고, 목소리가 발랄한 사람이죠. 젊은 사람들 용어로 섹시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패기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이런 사람은 특히 영업직에 잘 맞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반면 내성적인 타입이 많고 참모형이기 쉽죠. 기회란 감나무에 열린 감처럼 밑에서 입만 벌리면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떨어지게 만들고, 안 떨어지면 나무에 올라가 따야 합니다. 패기와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설사 취업이 안 되더라도 어딜 가나 환영 받습니다."

-일자리가 늘어도 비정규직입니다. 한쪽에서는 노동 개혁 없이는 일자리 창출도, 신성장 동력 산업 육성도 요원하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노동의 유연성이 생기면 더 많이 채용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수 있어요. 기업들이 그렇게 안하는 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면 평생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

-창업도 부진합니다. 몇 년 전 벤처기업협회가 조사한 결과 100대 기업 중 과거 30년 동안에 창업한 회사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순수 제조업체는 아니지만 30년 가까이 된 웅진그룹이었죠.

"청년실업을 줄이려면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한편 창업을 장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창업할 생각을 안 합니다. 도전정신이 부족해요. 물론 한번 망하면 영원히 망하는 창업 환경이랄까 생태계 탓이 큽니다. 나는 실업수당도 창업하는 사람에게 몰아주면 좋겠어요. 요즘은 살 만한 사람도 실업수당 타먹습니다. 그러느니 창업자금으로 지원하고 사업 망하면 안 돌려받는 겁니다. 어차피 실업수당으로 나갈 돈이니까. 오죽하면 재벌그룹이 과점하고 있는 인재의 절반만 내보내면 우리 경제가 활성화될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해 봅니다. 이 우수한 인재들이 창업전선에 뛰어들면 경제가 활성화될 겁니다."

-웅진출판(웅진씽크빅의 전신)을 30년 만에 계열사 14개, 매출액 5조원이 넘는 그룹으로 키우셨습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윤 회장님이 보시기에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꿈입니다. 사람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꿈이 있어야 합니다. 성공이나 출세가 아닙니다. 출세하고 돈 많이 번 사람 중에도 불행한 사람 많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에서 작은 성취를 맛본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거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살고, 그럴 여유가 없어도 봉사는 할 수 있습니다. 가치 있는 삶엔 보람이 따릅니다. 또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회장은 영어로 된 백과사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첫 직장인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근무할 당시의 일이다. 이렇게 뛰어난 실적을 올린 덕에 미국 브리태니커 본사가 54개국 지사 세일즈맨 중 최고의 실적을 올린 세일즈맨에게 주는 벤튼상을 받았다. 그런 그도 첫 출근 날 백과사전을 못 팔 것 같은 좌절감에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뒤꽁무니를 뺐다. 자신을 붙잡고 두 시간 남짓 교육을 한 매니저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하숙집으로 직행했다. 다음 날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찾아간 사무실에서 그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사내와 마주쳤다. 그날 백과사전 두 세트를 팔았다는 그를 보고 윤 회장은 나도 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책 gt;에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라고 못할 리가 없다. 한번 해보자! 이렇게 도전하는 마음,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세일즈 첫 날 도망친 '판매왕'

-가장 큰 좌절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사업 초기엔 사람들 때문에 좌절했죠. 판매상 시절, 믿었던 사람이 나가서 같은 판매점을 차렸을 때였습니다. 그 시절엔 자금이 너무 안 돌아 망할 것 같은 위기감도 있었어요. 특히 IMF 체제 당시에 많이 어려웠어요. 어려울 때면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절도 이겨냈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텼습니다. 사실 어려서는 밥 안 굶는 게 소원이었고, 세일즈 할 땐 가장 많이 파는 게 꿈이었죠. 그때와 비교하면 어려웠을 때도 언제나 가진 게 너무 많았어요. 좌절하기엔 너무 좋은 여건 아닌가. 그러면서 어려운 시절을 통과했습니다."

-평생 책을 만드셨는데, 윤 회장님의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은 무엇입니까?
"생각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부제가 달린 '적극적 사고방식'(노먼 빈센트 필 저)을 읽고서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됐죠. 성직자가 쓴 책입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 에서 여성의 잠재력을 발견했다고 하고는 여성의 단점에 대해 도전적이지 못하고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런 지적에 수긍합니다만, 여성의 이런 특성이 혹시 환경 탓은 아닐까요?

"나는 타고 난 것이라고 봅니다. 동물의 세계를 봐도 암컷은 순진한 반면 수컷을 피해 도망을 다니죠. 이런 여성의 특성을 무시하고 남성과 같게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은 남성대로 장점을 더 강화해야지, 여성을 남성화시키거나 반대로 남성을 여성화시켜선 안 됩니다."

윤 회장은 달변에 가까웠지만 그보다 거침이 없었다. 그는 장하성 학장에 대해 "만날 남의 잘못을 꼬집은 시민운동가라 처음엔 별로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만나 보니 시장주의자이고 합리적이더라"고 했다.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사람으로 좌파로 보기도 어렵다"고 코멘트했다.

윤 회장을 경영학과 겸임교수로 초빙한 장하성 학장은 윤 회장의 안 알려진 면모에 대해 이렇게 귀띔했다.

"강의를 하면서 한번은 손자뻘인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릅디다.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죠. 굉장히 평범하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돈 좀 벌었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정치판이 어지럽습니다. 정치가 실종된 시대를 사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정치가 가능할까요? 기업가의 몫도 있지 않을까요?

"정치는 근처에도 갈 생각이 없습니다. 기업이 재미있어요. 스스로 뭘 만들어 내고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죠. 정치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 재미도 없고."

이필재 월간중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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