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신년사 총선홍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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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일 시무식에서 발표한 새 천년 신년사는 대통령의 연두 시정연설인지, 아니면 새천년 민주신당(가칭)의 총선 공약인지 혼란스럽다.

대통령의 신년사란 국정 한해의 목표이자 방향 제시다. 金대통령은 이날 새 천년을 여는 첫해의 신년사답게 국민소득 1만달러 회복, 일자리 2백만개 창출, 초고속통신망의 조기 완공 등 많은 장기 비전과 정책들을 제시했다. 이는 지식기반 세기에서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시무식이 그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지나치게 총선을 의식한 것 같아 크게 마음에 걸린다. 金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이런 이념과 정책을 실현할 정당이 지금 창당되고 있는 새천년 민주신당이라며 노골적으로 신당을 선전했다. 金대통령이 신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창당 일정을 일일이 챙기고 그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가 신당의 중심세력이 돼 움직이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올해 총선이 돈선거, 폭로와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혼탁선거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특히 일부에서는 소수 정부인 현 정부가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면 행정력이 동원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연초부터 장밋빛 공약을 총동원해 신당 선전에 앞장선다면 총선에서 정부의 역할을 두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진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金대통령은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선거의 공정성과 정부의 중립성을 담보할 조치들을 명확히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번 신년사에서 金대통령이 재정경제.교육부 장관의 부총리 승격 및 여성부 신설을 제안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출범 때 작고 강한 정부를 표방하면서 일부러 경제부총리를 폐지했으며 통일부총리도 없애고 총리실이 조정기능을 맡도록 하는 등의 정부 개편을 어렵사리 단행했다.

우리는 그 이후 빚어진 경제정책의 혼선 등을 감안할 때 경제부총리의 부활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교육.훈련, 문화.관광, 과학, 정보 등의 인력개발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교육부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한다는 발상은 무리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력을 교육.배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한 부처장을 부총리로 격상시킨다고 당장 효율성이 높아질 것도 아니며 자칫하면 옥상옥(屋上屋)이 될 뿐이다. 정부 내에도 총리실이나 청와대에 종합 조정기능이 있으니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될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전담 부서를 신설한다는 발상 또한 과연 여성우대 정책인지, 또다른 역차별인지 의문이며 아무리 좋게 봐도 선거용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 이런 정부기구 개편과 같은 제안이 느닷없이 아이디어 하나 내놓듯 불쑥 제기되는 정부의 일처리 방식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편 과정에 더 신중한 접근과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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