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밀레니엄에 가져갈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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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행위과학분야에는 피그말리온(Pigmalion)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어떤 어렴풋한 행위요인에 대해 행위주체나 그 주체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부모.교사.상사 등이 그 요인에 긍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믿으면 실제로 그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의문점이 있는 실험이긴 했지만 오래전에 이스라엘 신병 훈련소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를 나타내는 실험을 했다. 신병을 두 개의 부대로 나누어 한 부대에서는 잘못에 대해 야단과 기합으로 훈련을 했고, 다른 부대에서는 반대로 잘한 것에 대해 칭찬과 격려로 훈련을 한 결과 나중 부대의 성적이 월등했다.

우리는 국난을 겪으면서 국민성에 대해 자조적이었지만 88서울올림픽을 치를 때는 모든 국민이 우리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신바람이 난 적도 있다.

우리 기성 세대에게는 역시 6.25전쟁이 지난 세기의 출발점이다. 6.25전쟁에서 4.19, 그리고 5.16에서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거쳐 이제 새 세기는 '민주주의' 와 '시장경제' 가 정착하는 시대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고 배웠다. 몇 번의 수난을 겪으면서 우리 문화는 과격과 조급함으로 변했다. 빨리빨리가 우리 몸에 배었고 문화유적마저 수치스러우면 없애버리는 과격함이 우리 역사 바로잡기였다. 세계화는 우리 정체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정체성인가.

첫째, 우리의 억척스러움이다. 1960,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가난을 딛고 일어서는 데는 우리의 영웅들이 있었다.

해외건설 노무자들은 기술로 거대한 토목구조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은근과 끈기로 실패를 끊임없이 반복해 억척스럽게 이루어 놓았고, 섬유공장에서 전자 공장에서 끼니를 거르며 일하던 또순이들은 까다로운 외국인 품질검사원의 불합격 판정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지루한 작업을 반복했다.

품질이 개선돼 가면서 생소한 CPM이니 TQM이란 말과 함께 재벌이 생기고 과격하던 학생데모가 노동쟁의로 변했다.

둘째, 우리의 평등의식이다. 건설노무자가 아파트를 사고, 또순이가 TV, 냉장고를 구입하는 동안 우리의 재계 지도자들은 세계를 누볐다. 그러나 국내 노동쟁의현상은 과격했고 성급했다.

서양식 경제논리로 따지더라도 나라의 부가 심각하게 편중된 것은 아니었다. 배가 고픈 것은 참더라도 배가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우리 정서 탓일까. 나라 밖에서 할 경쟁을 나라 안에서만 하다보니 능력이 없어 탈락하는 이웃이 생겼다.

셋째, 우리의 이웃돕기다. IMF에 구제금융 받겠다는 나라에서 외채 갚겠다고 금 모으기 운동을 하는 우리 발상을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도 지폐의 가치를 우려해 저축해 놓은 금괴가 아니라 기념으로 마련한 가락지와 장식물이다.

서양식 자선도 동양식 자비도 우리의 이웃돕기가 아니다. 지연이 있고 학연이 있고 일가 친척이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웃이다.

넷째, 우리의 촌스런 자신감이다. 서양사람들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표현을 쓴다.

샴페인은 우리 술이 아니다. 천연자원도 문화유산도 가진 게 별로 없는 우리의 촌스러움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첨단기술을 하지 말라는 이유가 없다. 정보통신기술은 이제 코드화할 수 있는 인류의 기술유산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은 활용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서양의 골프도 우리가 잘 칠 수 있고 서양의 야구도 우리가 잘 할 수 있다. 아마존의 베조스처럼,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처럼 컴퓨터로 세계기업을 일으킬 자신이 있다.

자신감에는 촌스러움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촌스러움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혐오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세계는 남과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사회다.

새 세기에 가져 갈 우리 문화는 먼지도 털어 버리고 때도 닦아 버리고 정리하고 잘 포장해 우리의 정체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민주주의.시장경제가 정착할 수 있고 우리의 경쟁력도 소생시킬 수 있다.

배순훈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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