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관계자들 "이 정권 흔드는 건 野아닌 주변인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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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 정권을 흔드는 건 야당이나 반(反)개혁세력이기보다 권력 핵심의 대통령 주변 인물이다. "

천용택 국정원장의 대선자금 발언 파문을 두고 청와대와 국민회의 등 여권 관계자들이 이같은 탄식을 하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옷 로비 의혹 사건의 망령에 줄곧 시달려온 여권 관계자들은 千장관의 행태를 허탈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민회의 고위 당직자는 17일 "국가 최고 정보기관장이 언론의 생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미묘한 사안을 함부로 떠들어도 되느냐" 고 비판했다.

이날 당직자회의에서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은 "千원장의 발언은 金대통령이 법에 어긋나는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그런 발언이 무슨 도움이 되고 소용이 있나" 고 개탄조로 지적했다.

국민회의에서 꼬집고 있는 '문제를 일으킨 대통령 측근' 은 옷 로비 수사 축소 의혹 사건의 두 당사자인 김태정(金泰政.구속)전 법무장관.박주선(朴柱宣.검찰조사 중)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언론문건 사건의 이종찬(李鍾贊)전 국정원장이다.

무엇보다 현 정권 들어 두명의 전.현 국정원장이 구설수의 한복판에서 국정혼선을 일으킨 데 대한 비판론이 당내에서 거세지고 있다.

또 다른 당직자는 "千원장이나 李전원장 모두 정보기관장의 기본자세인 익명(匿名)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여기엔 정치적 야심이나 대통령에 대한 과잉충성심이 깔려 있다" 고 지적했다.

당직자 회의에서 동교동 출신 최재승(崔在昇)의원은 "국정원장은 노출돼선 안된다. 꼭 숨어있어야지…" 라며 못마땅해 했다.

특히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했다지만 千원장은 법조 기자들과의 모임(15일)에서 '남북 정상회담' '서해교전 뒷얘기' ' '김정일의 여자 문제' '등 민감한 북한문제를 여과없이 털어놓았다.

千원장은 지난 추석 때 공군 헬기를 타고 고향인 완도를 찾아가 '정보기관장의 잦은 노출' 이라는 눈총을 받았다.

때문에 국정원 내부에서도 자조의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실무 직원들에게 보안과 입조심을 강조하면 '윗사람부터 잘해 달라' 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고 실토했다.

이하경.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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