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곶이공원 ‘남매 동상’ 요즘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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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살곶이 조각공원에 있는 ‘남매 동상’ 이야기다. 동상이 설치된 지난해 11월, 한 주민은 반바지와 반팔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남매 동상이 추울까봐 체크무늬 스웨터와 모자를 만들어 입혔다. 훈훈한 사연이 알려져 이후 ‘옷 갈아입는 동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1년 만이다. 남매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동안 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우선 남매에게는 어엿한 이름이 생겼다. 누나는 ‘여울이’, 남동생은 ‘가람이’. 원래 동상 제목은 ‘동심의 여행’이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남매상’으로 더 유명했다. 성동구청은 아예 시민을 상대로 공모한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여울이와 가람이는 이름 모를 시민들의 손에 의해 서너 차례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는 한양여자대학 의상디자인과 동아리인 ‘패크레(Facre)’ 학생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이날 입은 분홍색 코트도 ‘패크레’ 학생들이 2주 전에 갈아입힌 옷이었다.

‘패크레’ 회장인 곽지혜(21)씨는 “처음 옷을 만들어 입힌 시민의 따뜻한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 남매 동상 옷을 제작하게 됐다”며 “지도 교수의 조언으로 날씨와 계절에 맞는 옷을 디자인해 지금까지 총 7번 갈아입혔다”고 말했다. 결국 남매동상은 여느 아이들 못지 않게 수시로 예쁜 옷으로 갈아입어 왔다. 올봄에는 지난 겨울 입었던 망토를 벗고 예쁜 꽃무늬 원피스에 두건, 고동색 멜빵 바지에 나비 넥타이로 갈아입었다.

여름엔 딸기 모양이 그려진 핑크색 조끼와 캡모자, 흰색 레이스가 달린 밤색 조끼를 입어 멋을 냈다. 비가 많이 왔던 초가을엔 노란색과 파란색 우비를 나란히 입었다. ‘패크레’가 남매 옷 한 쌍을 만들 때 드는 원단, 부자재 등의 비용은 2만원 안팎. 곽씨는 “남매 옷을 재단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몸과 팔이 붙어있는 동상의 옷을 재단하는 방법’ ‘옷을 만들기 위한 선후배간의 협업’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법’ 등이 그것. 지금껏 ‘남매 동상’이 입었던 옷은 관리사무소에 대부분 보관돼 있다. 이들이 착용한 모자, 리본 등의 액세서리를 집으로 가져가는 시민도 있었지만 머플러나 니트비니 등을 만들어 오거나 더러워진 옷을 깨끗이 세탁해오는 시민도 있었다.

곽씨는 남매가 ‘청동상’이 아닌 ‘친동생’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동상을 찾기 때문에 꼭 친동생을 보러가는 기분”이라며 “내년에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동아리 후배들과 남매가 입을 옷을 미리 제작해 둘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곽씨는 더 추워질 때를 대비해 남매가 신을 양말과 내년 설날에 입을 한복을 제작 중이다. 그는 “치마와 바지로 가려지지 않는 남매의 발이 무척 시릴 것 같아 양말을 신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내년 1월1일에는 한복을 입고 세배하는 남매 동상을 시민들이 보시게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잠깐. 두 개의 동상 높이는 60㎝로 얼추 비슷하다. 그렇다면 동상의 주인공들은 누나와 남동생 사이일까 아니면 오빠와 여동생 사이일까. 동상을 제작한 오원영 작가에게 물어봤다. 오 작가는 “남자 아이는 아들을, 여자 아이는 앞으로 낳고 싶은 딸을 모델로 만들었는데 딸을 먼저 낳고 싶었던 옛 마음이 생각나 동상은 누나와 남동생의 컨셉트로 제작했다”라고 소개했다.

글ㆍ사진=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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