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7년 전 폐암 4기였습니다, 이렇게 살아 일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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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도 못할 정도인 폐암 4기 진단을 받고서도 7년째 정상생활을 하고 있는 이태식씨. [신인섭 기자]

경기도 의정부에서 음료 대리점을 하는 이태식(64·서울 장위동)씨. 그는 아침 8시30분이면 일을 시작한다. 하루 30여 곳의 마트를 방문하고 100여 상자나 되는 음료를 배달한다. 폐암 4기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2002년 6월 24일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삶을 포기했었다. 수술 불가 판정을 받고 항암제를 맞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를 구한 것은 새로 개발된 표적항암제. 국내 임상시험에 참가하면서 시작된 암세포와의 공생관계가 벌써 7년째 진행 중이다.

국립암센터 "4기 환자 생존율 28.2%”

지난달 15일 국립암센터에서 열린 ‘폐암 5년 극복 환자 격려식’. 올해로 3년째를 맞는 행사에는 생존율이 극히 낮다는 폐암과의 사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60여 명 참석했다. 이날 발표된 폐암 수술을 받은 사람(2001년 국립암센터 개원 이후 3A기 이하 1507명)의 5년 생존율은 62%. 1기 77.6~89.5%, 2기 63.3~72.9%, 3기 37.7~40.3%에 이른다. 이는 기존 교과서적인 생존율인 1기 50~70%, 2기 35~50%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 게다가 수술이 불가능한 4기 환자는 종래 3~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아주 예외적인 환자에게 시행한 수술 후 4기 환자의 생존율은 28.2%로 나타났다.

국립암센터 조재일 병원장은 “대부분의 암은 불치가 아니라 관리만 잘하면 평생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됐다”며 “폐암 역시 다양한 요인으로 치료 성적이 급격하게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0.5cm 암도 잡아내

폐암 성적의 1등 공신은 조기진단이다. 심진우(59·은평)씨가 대표적인 예. 조경업을 하는 그는 2004년 건강검진에서 오른쪽 폐에 3~4㎜ 크기의 암세포를 발견했다. 강남세브란스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는 “과거 X선 촬영은 종양 크기가 2㎝는 돼야 진단이 가능했다” 고 말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등장한 저선량 컴퓨터 단층촬영장치(방사선량이 적은 CT)는 0.5cm 정도의 작은 암도 확진한다.

수술 방법의 개선과 수술 후 관리도 생존율을 높인다. 과거 한 뼘 길이로 절개하던 외과 수술은 이제 구멍만 뚫는 흉강경 수술로 대체됐다. 특히 최근 소개된 로봇수술의 경우 흉터 크기가 2~5㎝로 작을 뿐 아니라 정밀한 수술이 가능해 수술 후 4~5일이면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

폐암 환자는 의외로 암이 아닌 다른 합병증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 조 원장은 “담배를 피운 사람은 폐 기능이 매우 떨어진다”며 “호흡부전이 폐암 환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폐 기능을 잘 보존하는 것이 생존율을 높이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실제 국립암센터의 사망 분석 자료에 따르면 암환자의 사후관리를 지원함으로써 암과 무관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종래 50%에서 지금은 20~30%대로 줄었다.

방사선 치료 뒤 표적항암제 복용

마지막으로 항암제를 포함한 다학제적 치료의 발전도 생존율에 크게 기여한다. 다학제란 약물·방사선 등 환자에 맞는 종합치료를 의미한다.

환경운동가 김재일(55)씨는 2003년 천식 치료 과정에서 폐암을 발견했다. 이듬해 오른쪽 폐엽에 있는 1.3㎝의 암세포를 떼어내고 1년 이상 항암제 주사를 맞았지만 암은 그를 비웃듯 재발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호흡이 가빠진 것. 계단을 오르거나 심지어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고통을 해결한 것이 방사선 치료다. 20일간 매일 5분씩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숨 가쁜 것이 해소됐다. 이후 그는 하루 한 알 복용하는 표적항암제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표적항암제는 이레사와 탈세바 두 종류. 하지만 이들 항암제는 흡연을 하지 않은 여성, 즉 비소세포암 중에서도 선암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잘 듣는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연희 교수는 “현재 임상시험 중인 폐암 표적항암제가 10여 종 되며 이 중에는 소세포암과 같이 기존 약으로 치료되지 않는 암을 대상으로 하는 항암제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폐암을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으므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종관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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