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시인' 이육사 안동에서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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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이 육 사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백마(白馬) 타고 오는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중고등학교 시절 한번쯤 읊조렸던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 주변 강대국들의 역사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 지금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http://264.or.kr)을 찾아가 보자.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안동시에서 30여분 거리인 도산면 원천리 2000여평 터에 자리 잡은 이육사문학관은 지난 7월말 육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문을 열었다. 지금 원천리는 육사의 시와 달리 청포도를 찾아 보기 어렵다. 그 시절에는 청포도 밭이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육사(李陸史,1904~1944) 시인의 본명은 '원록(源祿)'이다.그의 필명은 독립운동으로 처음 감옥살이를 했을때 수감 번호가'264'였던 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올곧은 그의 정신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육사는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당시 원촌동) 881번지에서 진성 이씨 이가호(李家鎬, 퇴계 이황의 13대손)와 허형(許)의 딸인 허길(許吉) 사이에 6형제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 이육사 생가 터에 덩그러니 놓은 추모비와 시비.

▶ 이육사문학관에 들어서면 그의 동상과 대표시인 광야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18살에 출가,딸 하나를 두었다.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그의 딸이 지난달 이곳을 몰래 찾았다고 한다.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문학관 담당자 권영백씨는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가 커지면서 하루 평균 1000여명이 찾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그의 동상과 시 '광야'가 새겨진 시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어 '항일 기개로 초인의 삶을 산 민족시인' '(친.외가 모두) 창씨개명.신사참배 거부한 대쪽 집안' '중국 넘나들며 독립운동' '투옥(17번)으로 점철된 생애' '광복 1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옥사'라는 순서로 각종 유품과 사료가 진열돼 있다. 1층에는 헤드폰을 쓰고 버튼을 누르면 '청포도'와 '광야' 등 주옥같은 시 36여편을 눈과 귀로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시감상실도 갖췄다. 문학관에서 100m 떨어진 그의 생가 터에는 잡목들과 함께 청포도 시비가 외롭게 남아 있다. 그는 일제 강점의 암흑기에 저항수단으로 시를 썼다. 서울대 최창규 교수는 " 1900년대 이 겨레의 의병운동이 빼앗긴 역사의 첫 머리에서 터져나온 민족의 활력이었다면 , 바로 이육사에 의하여 대표되는 1930년대의 저항적 지성은 그 빼앗긴 역사마저 광복의 가능성을 거의 잃고 방황하던 역사의 절망을 지켜 준 실국역사 마지막의 활력이었던 것이다. "라고 했다.('이육사, 시대의 사상사적 좌표'가운데) 이육사기념사업회는 문학관 개관에 맞춰 국내 작고 시인의 필적과 현역 시인의 자필시 등 100여점을 기증했다. 작고시인 한용운과 조지훈.신석정.서정주.박두진 등의 유필 30여점과 피천득.김종길 등 현역 시인의 육필시 70여점 등 100여점을 덤으로 볼 수 있다. 광  야(曠野)

 이 육 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는 가혹한 일제말기 현실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광야)'을 기다렸다. 그 초인이 대한민국의 독립이었을지 아니면 더 큰 이상이었을지... 우리는 '광야'를 떠올리며서 그런 초인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관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있는 도산서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한국의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해마다 25만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관리소 김정인 소장은 "선비정신은 예의와 염치를 구별하는 것"이라며 "돈.명예.성(性) 이라는 인간의 욕심을 다스렸던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현대화한 선비학교도 열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떻게 가나=승용차로 서울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면 약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서안동IC에서 약 한시간 국도와 지방도를 달려 도산서원 이정표를 찾아가면 된다.도산서원에서 5분거리다.안동관광안내소( 054-851-6397), 이육사박물관(054-851-6391),도산서원(054-856-1073) ①서울 중부고속- 호법IC - 영동고속 - 만종IC - 중앙고속 - 서안동IC - 안동시내 - 안동역-도산서원 방면 ②대전 대전IC - 경부고속 - 대구금호IC - 중앙고속 - 남안동IC - 안동시내 - 안동역-도산서원 방면 ③부산 - 경부고속 - 금호IC - 중앙고속 - 남안동IC - 안동시내 - 안동역-도산서원 방면 ④광주 - 88고속 - 서대구IC - 중앙고속 - 남안동IC - 안동시내 - 안동역-도산서원 방면 ◇먹거리=제사상에 올라가는 나물을 비빔밥처럼 비벼먹는'헛제사밥'이 안동의 대표 음식이다.제사를 지내지 않고 밥을 먹는다고 해서 헛제사밥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안동시에서 안동댐으로 올라가다 보면 안동댐민속박물관(054-821-0649)이 나온다.이 박물관 주차장 건너편 '까치구멍'집과 '헛제사밥'집이 유명하다. 안동 특유의 간고등어 구이도 빼놓을 수 없는 명물. 헛제사밥은 종 나물을 고추장이나 간장에 비벼 무국과 함께 먹는다. 8가지 제사음식도 한 접시에 담아 정갈하게 나온다. 그중 하얀색을 띠는 상어 편육도 한조각 얹혀있다.예전 안동에선 제사상에 간고등어와 삵힌 상어를 올렸다. 그 이유는 안동이 내륙이라 운반 과정에서 상하기 쉬워 고등어에 간을 했고 상어 역시 삵혀 제사음식으로 올렸다고 한다. 까치구멍 집은 안동댐 수몰지구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겼다.헛제사밥 1인분 6천원, 간고등어 8천원이다.헛제사밥에 찬이 더 나오는 양반정식은 1만원.후식으로는 식혜에 생강과 고추가루,무를 넣어 만든 안동식혜도 별미다.소화에 좋다고 한다. ◆ 찾아가는 길 안내 ☞ 안동=김태진 기자 이 기사는 본지 대학생 VJ 홍지현(숙명여대)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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