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역사와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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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백년 전까지 정보의 대규모 유통매체는 문자 뿐이었다.

이미지정보의 저장과 유통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됐다.

이 새로운 정보유통매체를 최대한 활용해 온 분야가 영화다.

영화의 핵심요소는 이미지다.

문자에 비해 이미지는 인간의 의식을 강한 힘으로 사로잡는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란 말대로 '눈으로 본' 사실은 압도적인 사실감을 가지고 논리를 초월하는 호소력을 발휘한다.

마르크 페로의 '역사와 영화' (주경철 옮김.까치.9천원)는 이미지매체로서 영화가 20세기 역사에서 점해 온 위치를 살핀 책이다.

두 측면이 있다.

20세기의 지배적 문화현상으로서 영화는 역사서술의 대상이면서 또한 문자를 통한 역사서술과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서술방법으로서 영화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날학파 소속으로 러시아사 전문가인 페로는 역사서술방법으로서 영화에 중점을 두지만 역사현상으로서 영화의 의미도 이와 떼어낼 수 없이 뒤얽혀 있다.

논리보다 직관에 호소하는 이미지매체의 특성 때문에 역사서술의 주체와 객체가 분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 영화제작에는 많은 비용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데올로기 전파수단으로 영화가 널리 이용됐다.

그러나 대중화와 기술발달에 따라 제작 문턱이 낮아지면서 영화는 다양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식을 표출하는 통로가 됐다.

20세기 후반 텔레비전의 역할은 영화에서 연장된 것으로 본다.

페로의 분석이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상업영화' 의 뒷면에서 시대의식의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이다.

그래서 미국의 영화와 역사의식 사이의 관계를 파고든 제 20장은 우리 일반독자들에게도 절실하게 읽힐 것이다.

내용의 3분의2는 77년도 초판에 실린 글이고 나머지는 93년 개정판에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두 부분 사이에 단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데서 주제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얼마나 탄탄한 것인가 확인할 수 있다.

몹시 압축해서 쓴 내용을 정확히 옮겨 쉽게 읽히도록 한 역자의 노력에도 경의를 표한다.

김기협 문화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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