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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심는 과학관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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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 캔버라에는 흔히 '퀘스터콘(Questacon)'이라고 알려진 국립과학기술센터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건국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1988년에 건설된 이곳은 '만지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과학관으로 유명하다.

지진 체험관에 들어가면 리히터 지진 강도계의 숫자가 높아짐에 따라 관람객은 점점 더 심하게 지면이 흔들리는 지진을 경험하게 되고, 천둥번개관에 들어가면 테슬러 코일 위로 300만 볼트의 번개가 내려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연간 관람객의 수가 캔버라 시의 인구(31만명)보다 많은 37만명이나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체험형 전시물 덕분이다.

일본 도쿄(東京)의 오다이바에 있는 국립일본과학미래관은 일본에서 가장 크고 잘 만든 과학관으로 유명하다. 우주비행사인 모리 마모루가 관장으로 있는 이곳은 혼다에서 만든, 사람처럼 걷고 춤추는 로봇 '아시모'가 안내를 맡고 있어 일본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곳에 한번 가보고 나면, 일본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 1위가 왜 '과학자나 박사'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나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과학관을 단체관람하거나, 방학숙제를 위해 부모님과 함께 과학관을 견학하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나라 과학관은 아이들이 즐기면서 참여하는 과학관이 아니라 '수십 년 전의 과학관을 그대로 전시해 놓고 있는 박물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고 고장난 과학 전시물투성이다.

과감한 예산 지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과학관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꼭 재정 문제가 아니더라도 관람객을 위한 작은 배려가 정말 아쉽다. 잘못된 원리 설명이 그대로 방치돼 있거나, 쓴 사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불친절한 설명'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받아줄 안내요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급하게는 정부의 과학관 예산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외에도 민간적인 차원에서 할 일도 있다. 우선 이공계 대학생들이 전시물 앞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과학을 설명하는 기회를 마련하거나, 은퇴한 과학기술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과학을 설명해 주는 봉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관람객에게 훨씬 더 유익한 과학관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도쿄에 있는 일본의 국립과학관은 시설 면에서는 대전에 있는 우리나라의 국립중앙과학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국립과학관에는 나이 든 과학기술자들이 교통비와 식비, 그리고 유니폼 정도만 제공받고도 어린 학생들에게 자원봉사로 과학교실을 운영하고 전시물 앞에서 학생들에게 질문도 하고 설명도 해준다. 그 모습은 아이들에게 과학관에서 배운 그 어떤 과학지식보다 소중한 경험이 된다.

좀더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과학관도 뛰어난 연구원을 고용해 그들의 연구 성과가 전시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과학관에 고용된 과학자는 정해진 시간만큼 과학관에서 대중강연을 하게 하고, 자신의 연구와 연관된 독창적인 전시물을 제공하도록 할 수도 있다. 또 연구프로젝트를 딸 경우 과학관에 일정금액을 제공해서 보다 나은 전시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금을 마련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과학관이나 뉴욕 자연사박물관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하루종일 놀면서 과학을 배울 수 있는 곳, 함께 따라온 부모마저 즐기다가 돌아가는 곳,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곳. 그런 과학관에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의 꿈이 싹튼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시스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