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여 중진 겨냥 차기 지도자론 첫 언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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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대통령이 1일 당의 차기 지도자론에 대해 언급했다.국민회의 총재단·고문단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였다.

金대통령은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자기 처신을 위해 당을 외면하거나 등한시하는 것은 올바른 당인(黨人)의 태도가 아니다" 며 "당을 사랑하고 당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나는 이로울 때나 불리할 때나 당에 몸을 던져 민주화 투쟁을 해왔다" 고 했다.

金대통령은 참석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릴까봐 우려하기라도 한 듯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 는 말도 덧붙였다.

일회성 질책이 아니라 국민회의 중진이나 차세대 주자로 자부하는 인사들에 대해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오찬 참석자들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고 민망해 했다. 여의도 당사로 돌아간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기합받고 왔다" 고 분위기를 전했다.

金대통령이 당의 차기 지도자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집권 후 처음이다. 그만큼 이 발언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옷 로비 사건과 관련, 신동아그룹의 로비가 자신에게도 있었음을 밝히고 "모든 잘못은 내게 있다" 고 사과해야 하는 굴욕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 '애당심' '충성도' 를 차기 지도자 선택의 최우선 잣대로 삼게된 것 같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분석이다.

金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동교동계 당직자들은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결해 적극적으로 정국 현안 해결에 나서달라는 뜻" (韓和甲총장), "어려운 때인 만큼 애정을 갖고 당을 올바르게 이끌어달라는 격려" (金玉斗총재비서실장)라고 풀이했다.

"당보다 자신의 인기와 이미지 관리에 열중하는 일부 차세대 주자와 강연 정치에만 몰두하는 중진들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 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신당 창당을 앞둔 시점이라 金대통령의 발언이 던진 파장은 적지 않을 것 같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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